7. 대제사장과 왕의 시대 그리스도
7. 대제사장과 왕의 시대 그리스도
(1) 대제사장 시대
①시대적 배경
시대적 배경은 사시시대 말기 영적으로 가장
캄캄한 암흑기였다. 이 때 하나님은 엘가나라는 레위인의 가정에서 태어날 아기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시키셨다.
사무엘 상하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지는 왕정 정치시대로의 150년간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성경이다. 사사이면서 선지자인 사무엘을 통해서 세워진 사울왕과 다윗왕을 통해 이스라엘은 새로운
왕정시대로 진입하였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의 변화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 시대적 정치적 변화속에서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어떻게 하나님앞에서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4,000명의 군사가 전사하는 등 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앞세우고 전쟁을 하려고 했다. 언약궤
옆에는 엘리의 두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이 30,000명
정도가 전사하고 언약궤도 빼앗기고 말았다.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엘리가 나이 98세였으므로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길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있다가 누군가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와서 두 아들도 죽고 언약궤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몸이 비대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내 즉, 엘리의 며느리도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부리다가 아이를 놓고 죽어버렸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가봇인데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이다.
대제사장 엘리는 신임할 수 없게 되었고, 사무엘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이 직접 우상의 소굴로
가서 모든 것을 처단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 언약궤를 돌려주려 하였으나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스스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된다.
엘리가 늙자, 그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백성들에 대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자들과 동침하였음을 엘리가 들었다. 엘리는
아들들을 타일렀다. 회개하도록 했지만 아들들은 듣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엘리에게 나타나 “너희 조상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바로에게도 나타났고,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레위를 선택하셨고, 그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내 제단에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고, 화제를 너희에게 주었는데, 어찌하여 내 처소에서 내 제물과 예물을 밟고, 나보다 네 아들들을
중하게 여겨,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아들들을 살찌우게 했는냐”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네 집이 영원토록 환난을 볼 것이요, 그 징표로서 두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무시무시하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시겠다고 말했다. 사무엘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상황이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대에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율법주의로 변개하여 스스로 의로운 자라고 여기며, 성전을 장사하는 우상의 소굴로 만들어버렸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말라기 선지자의 말을 빌리면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하나님의 경고의 이유는 단 하나다. 그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제사와 예배로부터 돌아서서, 참되게 예배하여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회복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하셔서 경고하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는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로 나아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답한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주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야곱은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였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유한 자로,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격 없는 야곱을 사랑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복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다고 오히려 교만하여서 그 소중한 영적인 권리를 지금 눈에 보이는 지극히
작은 것, 세상의 것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에서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 후손인 에돔 족속 역시 흩으시며
황폐케 하시고 헐어 버리셨다.
그런데 야곱(이스라엘)이 에서의 모습을 가지려 했다. 교만해 졌고,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며, 특히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리더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며 살아갔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그렇게
하면서,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먼 희생제물을 바쳤다. 가장 보잘 것 없는 것, 남아 썩으려 하는 것, 절고 병든 것을 드리며 제사를 드린다고 했다. 하나님을 눈 먼 분으로
대하며, 자신들의 제사가 받아졌다고 착각한다.
예배를 기뻐하시고 제사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너희 중에 누군가 이 헛된 제사를 그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없는 제사, 하나님이 받지 않는 위선의 예배로 헛되이 예배하나 그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과
탐심을 예배하는, 두 주인을 섬기는 그 제사를 주님은 받지 않으셨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이 없는 제사와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복중의 가장 큰 복은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는 신령한 복이다. 그 분의 선하심을 맛 보아 세상의 거짓 달콤함을 이겨내고, 그분의 좋으심 때문에 세상의 악함 가운데에도 빛으로 살 힘을 얻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장 큰 복은 예배를 통해 주님과 깊이 교제하여 주님과 세상에서 동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자신의 임재를 거두신다.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방식으로 드리는 예배, 훔친 물건을 드리며 이 정도면 됐다고 하고, 자신의 우리에는 탐스러운 수컷이 가득하나, 흠 있는 것을 속여 주님께
드린다고 생색을 내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당신의 임재를 거두시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예배, 하나님의
방식으로 드려지지 않은 제사, 그것이 성전에서 드려진 가슴 아픈 예배의 모습이었다.
②엘리 대제사장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나”, “브닌나”였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한나는 자식 없었다. 엘가나의 가족은
매년 실로에 가서 기도를 드렸는데,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사장은 제물의 분깃을 다른 아내
브닌나와 그의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 이렇게
되니 브닌나가 격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니 한나가 울고 먹지도 않았다고 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곤 했다.
어느 날 실로에서, 한나가 식사를 마친 후에 일어날 때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엘리 대제사장이 앉아있었는데, 한나가 기도하는 것을 엘리 대제사장이 보게되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만일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하는 것을 들었다.
한나는 오늘날 교회를 상징한다. 여인이 아들을 낳는 것이다. 아들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부활의
자녀를 생산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나실인은 나사렛 예수를 상징한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서는
다시 하나님께 아들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는 한나가 기도할 때 입을 주목하여
보니, 입술은 움직이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술취한
줄로 생각하고,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 하는게 아닌가(삼상1:14) 그래서 한나가 대답하기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게 아니고,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아뢴 것 뿐입니다, 악한 여자로 보지마세요”
라고 대답했다. 엘 리가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하며
축복하니 한나도 “당신의 은혜 입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편안한 얼굴 빛으로 돌아갔다.
한나와 남편 엘가나가 집으로 돌아가서
그날 동침했다고 한다. 아마도 좋은 징조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서원대로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다.
한나는 감사의 기도를 찬양으로 마음을 표현했는데, 뿔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나가 뿔을 들고 축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메시야(그리스도)의 뿔을 드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데, 뿔은 가치, 위엄, 권능, 명성 그리고
안녕을 가시적으로 고양시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엘리는 나이가 들어 눈이 점점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처소에 가서 눕곤했는데, 사무엘이
있었으므로 등불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는데,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가 부르는 줄
알고 엘리에게로 가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니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기를 세번이나 반복했는데, 그때, 엘리가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에 부르면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하라고 하고 엘리와
사무엘이 각각 자기 처소로 가서 누웠는데, 역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 중에 했던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3:11) 하면서 엘리의 아들들이 저질렀던 죄악을 이야기하고, 죄악에 대해서 제물이나 예물로서는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않겠다고 사무엘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사무엘이 아침에 일어나서 엘리에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이 네게 무슨 말씀을 했는지 숨기지 말고 이야기 해 달라고 하는데, 사무엘이
숨기지 않고 모두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내용은 정말 상반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세번이나 부르고, 엘리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무엘을 통해서 엘리의 두 아들의 패역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두 상반된 내용을 통해서 지도자의 위치가 바뀌게 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시간이 흘러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의 말이 모두 성취되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심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삼상3:21)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것은 모세이후 처음일 것이다. 하나님의 현현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환점이 오고 있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것은 아브라함이 90세 때 나타나셨다. 물론 그 전에도 환상 중에 나타나셨지만 직접
나타나신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자신을 밝히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홍수 이후 처음으로 사람에게 나타나신바, 믿음의 백성으로 선택을 해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나타나, 애굽을 떠나도록 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제 사무엘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어떤 역사적 대변환기인가, 하나님의 간섭이 강화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모습은
세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이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창3:8), 둘째, 시내산에서 지시한 성소와 언약궤이다. 셋째, 성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선악과를 먹어버렸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싶어,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그리고
성육신의 하나님을 십자가에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 볼 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은 하나님이 지도자를 내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하신 역사들 가운데, 가장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여호와의 궤가 전쟁에서 빼앗겨 영광이 사라졌는데, 그 궤가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그 영광이 드러나므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궤가 블레셋에 빼앗기는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낮아지심이요, 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지만, 그의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는 이전의 육적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부활은 이전의 영광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전의 영광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에서 존재했던 그 영광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지도자로
소명을 받았다. 세상의 지도자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선지자로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지도자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사무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의 지도자이면서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 이후에는 세상의 지도자와 선지자가 둘로 나누어지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신정일체에서 신정분리의
체제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육적인 것은 죽어야 할 존재들이며, 영적으로 다시 부활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했을 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신다. 바로 성전의 건립이다. 하나님은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간섭하시고 계셨다.
성전은 이 땅에서 성전을 의미하나, 영적으로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을 예고하고 있다. 돌로 된 성전(옛성전:옛사람)은 파괴되어야
할 것이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전(새성전:새사람)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부활생명으로 영원할 것이다.
③ 대제사장 사무엘
사무엘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듣는 자에게 새 이름을 줄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고 새 이름을 얻게된다. 그 새 이름이 바로 사무엘이다. 한나가 새 이름인 사무엘을 얻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희망의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스라엘에게 왕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사무엘상 7장 15절「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샤파트)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샤파트)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샤파트)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샤파트는 다스리다 라는 의미로서,
왕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16절에서 다스리는 샤파트는 선지자로서 역할이며, 17절에서 샤파트는 제단을 쌓는 것과 연결되므로, 제사장직인 다스림이다. 왕, 선지자, 제사장은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사무엘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바로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당시 사무엘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샤파트라는 단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성도 역시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이 구약시대는 왕, 선지자,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한 다스림에
있는 것이다.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심으로 국토를 회복하게 된다. 블레셋에게로부터 빼앗겼던 성읍이 에글론으로부터 가드까지 회복되었다. 사무엘이 다스리는 동안에는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자기 고향 “라마”도 다스렸다.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아모리 사람과의 관계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가나안 부족을 집합적으로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들은 함족에 속하는데,(창10:6, 15, 16; 대상1:13-14.) 아브라함 시대 엘람왕은
다른 세 왕과 힘을 합하여 가나안 남쪽 지역을 기습하였으며, 사해 남서쪽에 있던 곳으로 여겨지는 하사손-다말에 사는 일부 아모리 사람들을 쳐부수었다.
헤브론이나 그 근처에 사는 세 명의
아모리 사람은 당시 “아브람의 동맹자들”이었으며, 침략한 왕들을 아브람이 추격하여 쳐부수고 조카 롯을
구출할 때 동맹자들로서 도움을 주었다.(창14장) 하지만 그 후 어느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사람들의
잘못이 결국 “온전히 차게 되면 그의 자손들이 외국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창15:13-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가까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모압과 암몬의 영토를 침입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다.(신2:9, 37)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도 헤스본에 있는 시혼왕에게 통행 허가를 내줄 것을 청하면서 이처럼 굳게 보증하였다.
“내가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밭이나 포도원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우물물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왕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시혼은 허가를 내주기는 커녕 자신의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가, 헤스본에서
약간 떨어진 야하스에서 패배하여 그의 모든 영토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주게 되었다.(민21:21-32; 신2:24-36.)
사무엘이 나이가 많이 들어 그의 아들을
지도자로 내세웠는데, 요엘과 아비야였다. 그들은 브엘세바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런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훌륭한 행실을 본받지 않고, 이익에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왜곡하는 재판도 했다. 그러니까 이러한 소문이 퍼진 것은 당연하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있던 사무엘에게 가서 아들의 행위를 비난하면서, 이제
이스라엘에도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를 요구하였다. 사무엘은 이 말에 기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요구는 사무엘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말을 듣고, 그들을 다스릴 왕정제도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했다.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왕정제도를
설명하게 된다.
“왕정제도가 되면 백성들의 아들들이
군인이 되어야하고, 그리고 농사일도 담당해야 하는 2중의
일을 해야 하며, 딸들은 제사에 관계되는 일도 해야되는데, 향로
만드는 일, 요리하는 일을 해야 하고, 군이 필요한 식량을 1/10 제공해야 하고, 농장의 과일도 제공해야 하며, 나귀와 노비 등을 차출하여,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같이 하게 해야
하며, 목축하는 자는 양떼의 1/10을 식량으로 거두어 가게되니
그렇게 되면 생활의 어려움으로 너희들이 택한 왕정 때문에 하나님께 고통을 부르짖게 될 것인데 그때엔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다”(삼상8:11-18) 라고 사무엘이 설명을 하였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들을려고도 하지 않고, 왕정을
계속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무엘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왕은 필요없고, 눈에 보이는 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백성들은 그 정체성을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대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모세가 장시간 내려오지 않자. 자기들을 위한 우상을 만들었다.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예배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서 보이는 우상으로 전환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여러 종교에서 우상을 만들어서 신이라고
섬기는 이유도 다 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왕정제도는 엄밀히
이스라엘 국권은 강대해지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거의 노예가 되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이다. 사무엘이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왕정제도를 알려주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오직 왕이신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왕국이 되어 보겠다는 마음이 마음속에 가득찬 것이다. 사무엘이 하는 수 없이 백성들의 분위기를 하나님께
아뢰니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도록 허락하셨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데, 사무엘과 사울이 만나는 과정이 특이하다. 사울의 아버지(베냐민지파) 기스가 어느 날 암나귀를 잃었는데, 사울을 시켜 찾아오라는 것이다. 사울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숩이라는 땅에 이르러 사울은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같이 동행한 사환이 “이곳에 하나님의 사람, 선견자(선지자와 같은 말)가 있는데, 물어보면
어떻겠는가” 제안을 했다. 사울은 좋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고 하니, 사환이 1/4은 세겔이 자기에게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였다.
성읍으로 가다가 비탈길에서 소녀들을
만나 선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데,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 해준다. 아마도
사울이 준수하게 생겨서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었으리라, “오늘 산당에서 백성들의 제사가 있으므로, 성읍에 오셨는데, 성읍에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 지금 올라가면 만날
것이다” 라고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마 제사는 끝나고 식사 준비를 한참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울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아마 신당) 들어갈 때에 사무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의 계시로 사울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내일 이 맘때,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아라, 그가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리라”(삼상9:16)라고 말씀하는 것이었다.
사울은 사무엘의 얼굴을 잘 몰랐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선견자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선견자로
밝히면서 산당에 가 있어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사흘 전에 잃어버린 암나귀는 걱정말라신다. 그의 아버지가 찾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무엘이 사울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찾던 자라고 이야기 하는데, 사울은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지파 사람인 저를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 하느냐고 응대하였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을 인도하여 식사에 청한 자리의 가장
상석에 앉히는데, 그곳에는 30명 정도 초대되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요리사에게 특별히 준비한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울에게 이것은 기간이 좀
지난 것인데, 너에게 줄려고 예비한 것이라고 하면서,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산당에서 내려와 사울과 함께, 성읍에
들어가서는 지붕(아마 지붕 위에 방이 있었을 것임)에서 담화하고, 잠을 잔 후 동 틀때 쯤 일어나 사무엘이 사울보고 일어나라고 깨워, 함께
성읍 끝에까지 가다가 사환은 먼저 가라하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네게 말할 것이다. 네 아버지가 암나귀를 찾았는데, 네가 걱정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더 나아가서 다볼이라는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인데, 세 사람의 모습은
한 명은 염소새끼 셋을 끌고 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다. 그들이 먼저 네게 인사를 건네며 떡 두 덩이를
네게 줄 것인데, 받아라,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도착할
것인데,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을 것이다.
그리로 가서 성읍으로 들어갈 때,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 소고, 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인데, 네게 여호와의 영이 임할 것이다.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가 있어라, 내가
네게로 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7일을 기다려라.” 라고 사무엘이 말했다. 그때, 사울이 몸을 돌이키려고 하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였다.
위의 사울이 왕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암 나귀를 찾기 위해서 선견자를 찾는 일, 사무엘이 사울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던 사람이라고 하자 베냐민의 작은 지파 등 말을 하는 것, 벧엘로 올라가던 세 사람으로
부터 떡을 받는 일, 블레셋 사람의 영문으로 들어갈 때 선지자의 무리가 내려오면서 예언하는 것, 여호와의 영이 임해 새 사람이 되는 것 5가지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첫째, 암 나귀를 찾기 위해서 선견자를 만나는 일인데, 아마 그런 일들은
흔히 있었던 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울의 사환이 제안을 했고, 예물로
은 1/4이 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귀를 찾기
위해 여러 군데를 다니다가 마침 선견자가 있는 곳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환이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연한 생각이 사무엘과 만나는 단초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울이 사무엘을 찾도록 작은 사건을 통해서 인도하심을 깨달을 수 있다.
둘째, 사무엘이 사울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던 사람이라고 하자 베냐민의 작은 지파의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사사기 6장 15절에
기드온이 천사에게 한 말과 유사하다. “기드온이 그 분에게 대답하기를 오, 나의 주여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제 가족은 므낫세 가운데 가장 약하며, 저는 제 아버지 집에서 가장
보잘 것 없습니다.”라고 한 구절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가장 약한 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구원은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벧엘로 올라가던 세 사람으로 부터 떡을 받는 일에 대해서 세 사람은 성육신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 같다. 신약성서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넷째, 블레셋 사람의 영문으로 들어갈 때 선지자의 무리가 내려오면서 예언하는 것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많은 성읍이 블레셋 지배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울이 블레셋을 이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문을 드나들게 될 것이라는 예표일
것이다.
다섯째, 여호와의 영이 임해 새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다.
성도에게도 성령이 임하실 때, 성령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사무엘이 예언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그리고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명씩 여호와 앞에 나오라“(삼상10:19)라고 하셨다.
그리고 절차대로 제비뽑기를 하는데,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 중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히게 되었다. 그런데 사울이 안보여
사람들이 사람들 중에 찾아서 사무엘에게 데려다 주었는데, 키가 커서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다. 키가 컸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사울이 육체적인 힘이 대단했으며,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능력을 믿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는 예표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사무엘이 공표하고, 백성이 환호함으로서 사울이 왕으로 취임하게 된다.
사울이 왕이 되는 형식은 사무엘이
백성들을 꾸짖는 일로부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데,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보다 사람을 왕으로 세워 왕으로 모시는 것을 허락하셨는데, 아마도 삼상 9장 16절에 “내일 이맘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겠으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여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으므로 내가 내 백성을 돌아보았다”고 하셨다. 새 지도자는 불레셋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이다
(2) 왕의 시대
①최초의 왕국 사울왕
가. 인접국과의 전쟁
(블레셋과의 전쟁)
1차 전쟁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게바에서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하여 발생하는데, 블레셋의 군대는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굴과 산의 바위 등에 피신해서 숨었다고 하니 대단했을 것이다. 군의 장비를 비교하면 사울과 그의 아들에게만 칼과 창이 있고, 나머지
군인들은 600명 정도되는데, 괭이, 삽, 쇠스랑, 도끼, 무딘 쇠채찍 등이었다고 한다.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수행자 1명과 함께 단독으로 사울에게 이야기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얻어서 블레셋 진영으로 싸우러 들어간 것이다. 요나단이 블레셋에게 보일때, 만일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에게 오면 어쩔 수 없지만,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에게 올라오라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표징으로 삼자고 혼자 결심하면서 블레셋 군사들에게 접근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블레셋 군사들이 요나단을 보고,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적진에 들어가서 공격을 하여, 블레셋 군사 30명 정도를 처치했다. 이때 멀치감히 이 장면을 보던 사울이 부하에게 “저쪽에서 싸우는 자가 누구냐”고 하니 요나단이라고 알려주자, 사울은 공격의 명령을 내린다. 사울의 군사들이 가보니, 블레셋 군사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큰 승리를 거두고 블레셋을 계속 추격하게 되었다.
2차 전쟁이 있었는데. 다윗과 골리앗 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양 진영으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블레셋의 골리앗이 워낙 덩치도 좋고, 기가 강해 이스라엘 군이 공격을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사 중에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라는 세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같이 군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그들 형제들 외에도 막내가 있었는데, 양을 치고 가끔 싸움터에
음식을 배달하곤 했던 모양이다. 그의 이름은 다윗이었다.
싸움을 하던 어느 날 다윗이 형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던 중 골리앗이 상대 진영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들었는데,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워
떨고, 도망하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사울이 “그를 죽이는
자는 많은 재물도 주고, 딸도 주고, 세금도 감면해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듣게 되었다.
다윗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 사람이 누구인데, 하나님의 군대를 감히 모욕하는냐”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빨리 돌아가지 않고 무엇하느냐”고 하는데, 군인들이 가만히 들어보니 다윗이 한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
말이 소문을 타고 흘러 사울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울이 생각해 보아도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군대”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사울은 다윗을
수소문하여 왕궁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한 자초지종을 물었다.
다윗은 “자기는 양을 지키는데,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그것을 건져내었고, 그것들을
쳐 죽였습니다. 사자와 곰도 쳐 죽였는데, 사자와 곰을 쳐
죽이듯이 제가 블레셋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인데 블레셋이 뭐가 두렵겠어요” 라고 사울에게
이야기했다.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대장이 되어
가도록 허락하시고 자기 투구와 갑옷을 주지만 사양하고, 그냥 평소하던 대로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가에서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군사들에게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물 맷돌로 골리앗을 쳐 죽였다. 이 내용은 마치 사사시대에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사람 600명을
죽인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사울이 승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다윗을 지도자로 세우는 과정에 있음을 알게 된다.
사울은 보이는 자에 의해서 선택된 왕이고, 다윗은 보이지 않는 자에 의해 선택된 왕이다. 그래서 사울이 입혀주는 군복은 맞지 않는 것이다. 막대기는 양치기가
사용하는 도구이다.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한다. 시편 110편
2절에서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지팡이는 메시야를 상징한다. 다윗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전쟁에 나아가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6-17절『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돌 역시 메시야(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실제 그 당시에 매끄러운 돌을 사용해서 전쟁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돌은 상징적인 표현이 더 강하다. 매끄러운 돌 다섯에 대해서, 다섯이라는
히브리어 하메쉬는 하무쉬(군복으로 무장하다)와 같은 계열로서, 모세오경(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대변한다.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힘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6장 18절『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결국 영적으로 말씀의 전쟁이 되는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진리의 말씀과 진리를
벗어난 비진리와 전쟁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말씀의 전쟁이 계속 진행된다. 거짓 교사와 진리를 알리는 성도와의 영적 전쟁이 계속 된다.
엘리 대제사장과 사무엘의 이취임, 사무엘과 사울왕의 이취임을 살펴보면 하나님 명령에 불복종 할 경우 권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무엘은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이라는 곳에 살았던 엘가나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다. 아주 산 꼴짜기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엘리 밑에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의 때묻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울도 연약한 지파인 베냐민의 기스라는 농촌 출신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나 짓고 하던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다윗도 양을 치던 목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세울 때는 순전한 상태였지만 권력이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사실이다.
3차 전쟁 당시에는 다윗도 없고, 사무엘 선지자도 세상을
떠났으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 사울왕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그녀의 말을 듣는 우둔한 모습을 본다. 당시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 평야에서 요단강에 이르기까지 장악했고, 팔레스타인 중앙 산지도 그들의 세력이 뻗쳐왔다.
블레셋은 이스르엘 골짜기 북쪽 수넴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길보아 산에 진을 쳐 대치했다. 이
전쟁에서 사울왕과 요나단을 포함한 세 아들이 전사했고, 군사는 도망했다.(삼상31:1-6) 야베스-길르앗
군사들은 사울왕 생전에 그들의 성읍을 암몬사람들의 손에서 구했던 것을 기억하고, 야음을 틈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벳-스안에 장사를 했다.
이같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패했고, 다윗과 그의 군대도 블레셋 성읍에 있으면서 그들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길보아에서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는 마지막 승전이었다.
(세 왕국과의 전쟁)
모압과 암몬은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대전했으나 싸운 장소의 기록은 없고,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그들은 이스라엘에 예속되지
않았다. 에돔과의 전쟁은 모압과 암몬과 싸울 당시 그들 세 왕국은 인접한 나라였기 때문에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운 것으로 여겨진다. 소바 왕국은 시리아 다메섹 북쪽 인근 왕국이며,
다윗왕 통치에 이르기까지 북부 시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왕국과의 대전은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침공함으로서 사울왕은 이를 방어하기 위한 작전으로 여긴다.
(아말렉과의 전쟁)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우는 동기는
하나님께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이 있었는데, 이제 쳐서 멸망시키라”(심상15:2)는 것이다. 사울은
군사를 20 만명을 앞세우고 싸우로 갈 때에 겐 족속은 떠나라고 한다.
그런데 사울이 아말렉왕 아각을 사로잡고 백성을 진멸했는데, 왕과 그의 양, 소, 양 등 좋은 재물을 취하게 된다. 하나님은 남녀, 소아, 젖먹는
아이, 우양, 낙타 나귀 등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 왕권약화의 두려움에 따른 내부 분열
(사울의 질환과
다윗에 대한 적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무엘로부터
폐위 선언을 받은 후 사울은 정신질환을 갖게 된다. 결국 왕이 번뇌할 때에 이를 달래기 위해 수금타는
악사를 구하게 되었는데, 다윗이 선택되어 왕궁에 출입하게 되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뜨린 후 군대장관이 되고, 백성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게 되자, 사울은 다윗에 대해서 질투하여, 평일과 같이 수금을 타던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기 위해 블레셋과
전쟁을 해서 블레셋사람 양피 100개를 가져오면 자기 딸과 결혼할 수 있도록 다윗에게 명령을 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사람 200명을 죽이고 양피를 왕에게 주어서
사울왕의 딸 미간과 결혼을 하게 된다. 사울은 더욱 다윗에게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한 사울의 추적과 악행)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여러
번 추적을 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만다. 이러한 추적과 악행을 몇가지로 구분해서 보면
첫번째는 사울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해서, 다윗이 이스라엘 수도 기브아에서 라마로 도망하게 된다. 사울왕이
라마에서 도주한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있다는 소식에 다윗을 잡으려고 라마로 간다. 그러나 다윗이 다시
기브아에 도망한 것을 알게 되고,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은 평화의 맹세를 하고 헤어진다.
두번째는 다윗이 당시 여호와의 성막이
있던 예루살렘 북쪽 약 3km 지점, 놉에 도망하여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다윗은 가드라는 곳으로 도망하게 된다. 그 곳의 왕 아기스가 다윗이 어떤 인물이지 신하로부터 듣게 되는데, 다윗이
불안을 느껴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치광이 노릇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블레셋과 유다경계 지점 아둘람 동굴에 도망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의 친족과 마음이
원통한 자 및 빚진 자들 약 400명을 모아서 전투부대를 편성하고, 모압
땅에 도망하여 모압왕의 보호하에 있게 되는데, 선지자 갓이 나타나서 그곳에 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사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에게 다윗이 요나단과 평화맹세를 하는 바람에 자기에게 다윗을 고발하는 자가 없다고 하니, 에돔사람 도엑이 놉에서 아히멜렉이 숨겨주고, 골리앗의 칼도 주었다고
알려주므로, 사울왕은 제사장과 온 가족을 비롯하여 놉의 백성을 살해하고 만다. 아비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이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다윗에게 가서 사울왕이 저지른 일을 알려주었다.
세 번째는 다윗이 헤브론 서북쪽 그일라
성읍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게되자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 곳을 구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사울왕에게 알림으로 다윗과 그의 추종자 600명은
황무지로 도망을 하게된다. 십 황무지에서 요나단과 마지막으로 평화의 언약을 세우기는 했지만 십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여 사울왕에게 알림으로서 다윗은 다시 헤브론 남쪽 마온이라는 지역으로 도망했다. 그러나
다윗의 무리는 사울왕에게 포위를 당했는데, 그 당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므로서 사울왕은 다윗 쫒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요나단과 다윗이 두 번째로 평화의 맹세를 하는데, 결국 이것은 사울왕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다윗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암시를 달아놓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다윗과 일행은 사해를 내려다보이는
엔게디 황무지로 피하게되는데, 이 일을 사울왕이 알게되자 군사
3,000명을 거느리고, 다윗을 포위하게 된다. 가는
길에 길가에 양의 우리 곁에 굴이 있었는데, 사울이 변을 보러들어 갔는데, 다윗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다윗의 일행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이자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베는 표시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왕을 자기가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속담에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는 말을 하면서 사울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다윗은 설명했다.
다섯 번째는 다윗이 마온에 들렀을
때인데, 선지자 사무엘이 세상을 떠났던 시기이다. 다윗은
그 곳에서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는다. 사악한 나발을 하나님께서 죽여버렸기 때문에 다윗은
선한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사울왕이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으려고,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길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다윗이 알게되고, 그들은 사울이 쳐놓은 진에 조용히
접근하여 사울을 죽이지 않고, 다시 사울이 자고 있던 막사 안에서 사울왕의 머리 곁에 있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왔다.
사울이 깨어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멀리서 그러한 사실을 사울왕에게 알리므로서 사울은 또 다시 회개하고
발길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다윗은 블레셋 가드로 사울왕을 피해 갔는데, 그의 아내들, 및 600명의
호위병은 가드 왕의 “아기스”에게로 가니 사울왕이 완전히 포기를 해버렸다.
②다윗 왕
가. 왕으로 세워짐과 국가 분열과 내란
(왕으로 세워짐)
다윗은 유다 땅에 피할 곳이 없어
블레셋 땅 가드와 시글락에서 약 1년 4개월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그리고 사울왕이 전사한 후 주전 1010년 다윗은 6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 땅에서 헤브론으로 돌아왔다. 당시
헤브론은 유다 지파 본거지 성읍이고, 다윗은 그 곳에서 유다사람들에 의해 왕이 되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외 다른 지파는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7년 6개월을 유다 왕으로 지냈다.
(국가의 분열)
타 지파는 요단 동편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군 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움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 이스보셋은
그때 나이가 40세였다. 그는 2년간 왕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스보셋왕은 그의 신하 아브넬이 배반하여
다윗왕에게 투항했고, 이어서 이스보셋왕의 형제 바아나가 왕을 살해함으로서 이스보셋은 왕의 존재로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내란)
첫째, 압살롬의 반란이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그의 누이
다말과 이복형제 암논과의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암논과 다말도 역시 이복형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논이 다말의 매력에 빠져 상사병에 걸려있던 중 친구 요나답(다윗의 조카)이 놀러왔다가 요나답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의 계략을 짜내는데, 암논이 병든체 하다가 아버지 다윗이 오거든
“누이 다말이 자기 집에 와서 과자를 만들고, 직접 먹여주면 나을 거라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아버지
다윗왕이 딸에게 “오빠에게 가서 그렇게 하도록 시킬 것이다. 그때 사랑을 고백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요나답의 계략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이복동생 다말이 과자를 만들고 오빠인 암논에게 먹여주려고 가까이 갔을 때 암논이 그녀를 붙잡고 자기와 결혼하자는 것이었다. 다말이 놀래서 “나를 욕되게 마세요, 이스라엘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차라리, 왕에게 가서 정식으로 이야기하세요,”라고 이야기 하니 암논은 그저 즐기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강제로
겁탈을 해버렸다.
그리고 암논이 다말을 오히려 미워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끝내고 하인을 시켜 다말을 집에서 끌어내도록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이었다. 다말은 분해서 울때, 그의 친오빠 압살롬과 다윗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살롬은 다말을 진정시킨 후 조용히 복수의 때를 기다렸다. 다만
왕은 그저 노할 뿐이었다.
그리고 2년 후 압살롬의 집에서 양털 깍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는 다윗왕과
왕자들을 모두 초청했다. 왕은 가지않겠다고 하니, 압살롬이
그러면 암논을 비롯한 왕자들이라도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여 왕자들이 압살롬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종들에게 술로 잔치를 벌이고 암논이 거나하게 취하면 신호를 할 때 죽이라고 지시를
했다. 그리고 압살롬의 신호에 따라 종이 암논을 쳐죽이니 다른 왕자들은 모두 도망가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소문은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다 죽인 것으로 소문이 나고 다윗왕에게도 전해져 왕이
노발대발 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왕의 조카 요나답이 “모든 왕들이 죽은 것은 아니고 압살롬이 다말의
사건 때문에 복수하기 위해 암논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압살롬은 그술이라는 곳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압살롬이 도망한 후에 다윗의 마음이
풀렸는 것 같아서 요압이라는 사람이 “드고아”라는 여인을 시켜서 왕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했다. 그 여인은
자기는 과부이고 아들 둘이 있는데, 그들이 싸우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온 동네 사람들이 죽인 아들을 자기들이 처단할테니 내놓으라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완전히 가계의 씨가 멸절될 위기에 처해 있게 되었다고 했다. 왕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은 온 동네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못하도록 시키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맹세코 꼭 이렇게 할 것이라고 여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인이 갑자기 “왕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놓고, 왕의 내쫒긴 자는 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라고 말하면서 “누구나 죽을 운명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빼앗지 않는 방법도 알려주시지 않느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왕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은 분이라고 높혀 치켜세우니, 그제야 다윗왕이 그 여인에게 이 모든
일을 요압이 시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요압에게 명령하여 압살롬이 돌아오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요압이 다윗왕에게 간청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2년간은
다윗왕이 압살롬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삼하14:28)
압살롬은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을
앞세우고 반역을 준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송사의 문제에 있어서 판결할 사람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 말고, 자기에게 오면 송사를 해결해주겠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다윗왕에게 “제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나 했는데,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윗왕이 “서원 때문이라고 하면 헤브론으로
가도 좋다”고 허락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압살롬이 정탐꾼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보내어 나팔소리가
나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말하라고 선전했다. 압살롬이
200명의 유명 인사를 헤브론으로 초청했는데, 그 사람들은 아무 내용도 모르고 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윗왕의 모사도 청하였으니 반역이 확대되었다고 한다.(삼하15:12)
위의 내용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압살롬이 이복동생을 죽이고 도망갔다가 돌아오는
과정이다. 압살롬은 드고아라는 여인을 통해서 자신이 대를 이을 수 밖에 없는 장자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었다. 드고아라는 여인이 비유적으로 이야기했지만 결국 압살롬이 돌아오도록 허용함으로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이
다윗왕의 정권을 이어 받을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둘째, 압살롬이
재판관이 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직접 압살롬이 재판을 행한 행위, 이것은
왕위를 물려받는 순서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 서원을 이용하여
압살롬이 헤브론으로 갈수 있도록 왕의 허락을 받고 헤브론에서 모든 지파에게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알리고, 제사를
지낼 때에 핵심 권력에 있는 자를 초청하여 완전히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압살롬의 반역 프로그램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다윗왕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판관으로 활동하면서 존재감을 인지시켰으며, 하나님께
한 서원을 이용하여 헤브론을 거점으로 조직적으로 거사를 행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조직적 거사를 하나님께
서원의 형식으로 자기 멋대로 만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다윗왕은 피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셋 사람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600명이 왕 앞으로 행진했다고 한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와 모든 신하가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올라갔다고 한다.(삼하15:30) 이후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윗왕이 피난할 때에 위로하는 자도
있었지만 저주하는 자도 있었다. 므비보셋의 종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는 다윗을 위로하였지만 시므이라는
사람은 저주하고 돌을 던졌다고 한다. 저주하는 자를 아비새가 가만두지 않겟다고 하자 왕은 “자식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이 베냐민사람이 하는 것이 무슨 큰 일이냐,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일이니까 내버려두어라”고 그에게 말했다.
압살롬에게 두 사람이 함께 했는데, 아히도벨과 후새였다. 후새는 다윗을 섬기던 신하였다. 그래서 압살롬은 그에게 왜 다윗을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후새는
속임수를 써서, 이제 압살롬을 섬기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왕의 후궁이 있는데, 후궁을 취하게 되면 소문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질 것이고, 다윗왕이 더욱 분노하면 우리에게는 더욱 힘이 될 것이라고 잘못 건의를 하였다.
하나님은 압살롬의 얼마나 악하게 나오는 지 그냥 내버려 둔 것 같다.
그리고 아히도벨은 12,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다윗왕을 쳐 죽이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 백성들이 다 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작전에 대해서
압살롬이 후새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 계획은 옳지않다고 말했다. 다윗과 신하들은 용사들이고, 전투에 능한데 그 사람들은 어느 굴에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계략을 말해준다. 압살롬이 직접 군사를 모아서 전장에 나아가고,
기습 공격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압살롬과 신하들이 들어보니 후새의 계획이 훨신
더 좋다고 생각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징계하시려고 한 것이라고 한다.(삼하 17:14) 아히도벨은 자기의 계획이 성사되지 않자 결국 작전이
실패할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새가 제사장들에게 작전을
다윗왕에게 알려주도록 했는데, 제사장들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히마아”가 작전을 맡았다. 그들이 다윗에게 알리려는 순간에 한 청년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리고
그 청년은 압살롬 부하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은 급히 바후림이라는 어떤 집의 우물 속으로
피하는데, 그 집 여인이 우물을 덮게로 덮어버림으로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요나단과 아히마아는 다윗에게 그 사실을 알렸는데, 오늘 밤에 광야 나룻터에서 자지말고
건너가도록 한다.
압살롬은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내세워
많은 군사를 이끌고 길르앗에 진을 쳤는데, 다윗왕은 요압, 아비새, 잇대에게 군사를 삼 등분하여 압살롬을 공격하라고 하면서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고 하니 모든
군사들이 다 듣게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투에 들어가니 다윗의
군사들이 용맹하여 압살롬의 군사를 능가하였고, 압살롬은 노새를 탔는데,
노새가 상수리나무 가지 아래로 지나갈 때에 몸이 나무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우하라는 말에 압살롬을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래서
요압이 화가 나서 작은 창, 셋을 가지고 심장을 찔러 죽여버리니 그제서야 군사들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칼로 내리쳤다.
그런데 이 소식을 다윗이 듣고는 대단히
슬퍼하였다. 그래서 부하 요압이 다윗왕이 자꾸 슬프하니까, 다윗왕의
모든 것을 구한 군사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하면서 차라리 우리들이 다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자고 말했으며 모든 방백들이 다시 다윗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다윗왕이 피신할 때에 욕을
했던 시므이라는 자가 나와서 다윗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다윗은 너그러이 용서를 해준다. 그리고 왕궁에서 남아있던 므비보셋(발을 저는 자)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해주었다.
둘째, 세바의 반역이다. 베냐민 사람 불량배인 세바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다. 아마 베냐민 지파는 상당히 유다 지파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유다지역의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버리고 세바를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왕궁의 모든 행사를 중지하고 아마사로 하여금 삼일 내에 군사를 모으도록 했다. 그런데 지체를 하자, 다윗왕은 아비새에게 세바를 잡아오도록 명령한다. 이때, 요압과 용사들이 함께 세바를 잡으려고 출동하는데, 가다가 요압이 아마사를 만나게 되는데, 요압은 아마사가 세바와 내통한
것으로 여겼는지 칼로 죽이고 만다.
요압이 세바가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지혜로운 한 여인이 요압을 만나고자 했다. 그
여인은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다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이스라엘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어찌하여 우리의 기업의 땅을 공격하십니까”라고 말하였다.(삼하20:18-19), 그래서 요압은 그게 아니고, 세바라는 자가 다윗왕에게
반기를 드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으니 세바를 내놓으면 물러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혜의 여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아가 설명을 하고 세바를 붙잡아 그의 머리를 베어 성밖으로 던지니 요압이 물러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의 여인은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현자들, 그러니까,
그 지역의 총회에서 세바의 난동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란은 지역적으로 많이 발생했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의 총회는 살아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혼란)
또한 다윗의 시대에 3년간 기근이 있었는데, 기근의 이유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과의 약속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모리 사람들 중의 남은 사람들인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에게 화평을 약속했는데, 사울이 죽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아이 성을 점령한 후 여러 민족들을 정벌할 즈음에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으로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으려 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모른채,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고, 단독으로
화친을 맺고 만다.(수9:1-16)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기브온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니 이스라엘 영토내에서 살지 못하도록 모해 한 자의 자손 7명을 우리에게 내주면 우리가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목을 메어 달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울의 자손들을 넘겨주고 목을 메어 다니 죽은 때에 곡식을 베니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삼하21:10)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과의
사이에서 농사문제로 물에 대한 분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적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되자 다윗왕은 이방인이지만 잘못을 가려, 사회적 안녕을 꾀한 것으로 여겨진다. 7명을 내주는 것은 아마도
동해보상법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나. 국가적 통합과 이스라엘제국 건설
(포용정책)
다윗의 유다와 이스보넷의 이스라엘은
기브온에서 사소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항상 다윗의 군사들이 이겼다. 어느날 이스보셋왕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사울왕의 첩을 취한 사실을 이스보셋이 알게되어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꾸짓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브넬은 이스보셋왕을 배반하고, 헤브론으로 다윗왕에게
투항하게 된다. 그런데,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과 아브넬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다. 과거에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던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아브넬이 투항했지만 요압이 복수심으로 아브넬을 살해하고 말았다. 다윗은
요압의 복수심으로 죽게 되었지만 아브넬의 죽음을 정말 애도하게 되었고, 애가를 지어서 애도를 표했다.(삼하3:33-34),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의
사주에 의해서 죽지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윗이 애가를 짓고, 슬프하는 모습에 감동이
되었다고 한다.(삼하3:35-39)
다윗은 사울의 자손에 대해서도 관대하게
대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5살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급히 안고 도망가다가 아이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는데, 그 후로 다리를 절게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사울과 그 온 집안에 속하였던 것을 그에게 상속하도록 하고 편하게 지내게 해주었다.(삼하9:1-13)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손에 맥이 풀렸고, 그는 군 지휘관 바아나, 레갑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를 죽인 바아나와 레갑은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윗은 바아나와 레갑을 처형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반역을 일으킨자는 또 반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온 지파는 자발적으로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추대했고,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기름부음을
통하여 통합 왕으로 세웠다.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에게 충성을 돌리고자 서약한 사람들이 339,6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역대상 12:23-40) 이때, 다윗왕은
30세였으며, 4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전쟁과 영토확장)
첫째, 블레셋과의 세 차례 전쟁으로 블레셋은 병거와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호전적인
헷 제국을 무너뜨렸으며, 애굽의 바로 라메세스Ⅲ세와 전투를 경험한 족속이었다. 사울왕 전사 후 블레셋은 이스라엘 북쪽 지파들과 유다지파 중간지점인 베들레헴에 그들의 수비대를 배치하고, 두 나라의 분열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삼하23:13-14) 그러나 이스라엘이 12 지파로 통합되자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차 전쟁은 예루살렘 서남쪽 르바임 골짜기에서 있었다. 당시의
싸움은 다윗왕이 전체 이스라엘 통합군을 거느리고 처음 있은 블레셋과의 대전이었다. 그는 헤브론 동북쪽
아둘람 굴을 요새로 삼았으며, 블레셋은 르바임 골짜기에 편재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적을 물을 흩음같이 하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을 버렸고,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우상을 치웠다고 한다.
2차 전쟁은 1차와 같은 장소로 르바임 골짜기였다. 역시 블레셋은 골짜기에 편재되어 있었다. 다윗왕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블레셋 진영 후방을 공격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골짜기로 올라가지 않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게바에서 게셀까지 블레셋을 쳤다고 한다.(삼하5:22-25)
3차 전쟁은 블레셋이 다시 공격하여 와서 이스라엘이 싸우다가, 블레셋
사람들 중 거인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체 전쟁이라기 보다 국지적으로
거인들과 싸운 이야기이다. 거인들과 네 차례 싸웠는데, 처음에는
다윗왕이 블레셋과의 전쟁 후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거인들이 공격을 해 와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왕을 구한다는 이야기이고, 두번째는 곱에서 후사사람 십브개가 승리하고, 세번째는 역시 곱에서 엘하난이라는 자가 가드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고, 네번째는
가드에서 싸워 이겼다는 이야기이다.
가드에서 싸울 때, 거인들은 무게가 300세겔 되는 놋창을 들고, 새 칼을 찼으며, 창자루는 베틀 채와 같았다고 한다.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6개씩이었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다.
둘째, 사해 동남방 점령인데, 처음 있었던 전쟁은 사해 동부지방 모압과의
전쟁이었다. 모압은 다윗이 사울에게 추격당할 때 피신했던 곳인데, 다윗왕은
극심하게 그들을 쳐서 다루고 복종시켰다.(삼하8:1-2, 대상18:2) 다음은 사해남쪽에서 홍해와 애굽 접경까지 이르는 에돔 지방을 공격했다.(삼하8:13-14, 대상18:12-13) 당시 전쟁은 사해 남단 염곡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다윗왕 군대장관 요압은 6개월 동안
그 곳에 머물면서 에돔 남자를 다 없앨 때까지 쳤다.(열상11:14-18)
에돔왕의 아들 하닷은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애굽으로 도망쳐 바로의 보호를 받았다.
셋째, 아람지역 원정인데, 아람(시리아)은 독립된 나라가 아니고, 곳곳에 여러 도시국가로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는 다메섹 위의 소바 도시왕국이었다. 소바
왕국은 시리아 동북부 유브라데 상류지역에서 다메섹 이남 요단 동편까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소바 왕국은 적대관계였고, 사울왕 통치 당시도 소바 왕국과 싸운 일이 있었다.(삼상14:47) 다윗왕은 소바 왕국과의 전쟁에서 병거 1,000승, 기병 7,000명, 보병 20,000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리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맛(오론테스 강변) 왕국, 토이 왕은 다윗의 승전에 놀라 자진해서 항복하고 말았다.
넷째, 암몬, 소바 왕국 동맹과의 전쟁인데, 다윗왕은 요단 동편 왕 나하스가 죽자 새로이 즉위한 그의 아들 하눈에게 조의 사절을 보냈는데, 하눈왕은 그들을 정탐꾼으로 취급하여, 그들의 수염을 깍고 의복의
중동볼기(엉덩이 중간쯤)를 잘라 그들을 되돌려 보내면서 다윗왕을
모욕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암몬왕 하눈은 즉시 벧르흡과 소바에서 아람사람 20,000명, 마아가에서
1,000명, 돕에서 12,000명의 용병을
고용하고, 이스라엘이 공격할 것에 대비했는데, 다윗왕은 군대장관
요압의 인솔하에 우리야가 참전한 전투에서 그들을 복속하였다.
다섯째, 여부스 사람들과의 시온 산성에서의 싸움이었다. 다윗은 가나안 족속들의
수중에 있었던 예루살렘이라는 옛 도시를 빼앗는다. 여부스 사람들은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5:6)라고
말했는데, 상당히 요새화되어 있었던 같다. 그런데 다윗은
용병을 동원했다.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하였으므로 속담에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삼하 5:8), 브루거만에 의하면 이 말은 이 도시의 취약점은 수구에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의 부하들이 수로관을 타고 공격했거나, 물
공급을 차단함으로서 항복을 이끌어냈을 것으로 보고있다.
(예루살렘 천도)
이스라엘의 수도 헤브론은 이스라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전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부적합 한 곳이었다. 사울왕 당시에도 수도로서 부적합
했고,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을 뿐만아니라 샘물의 원천도 없었다.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예루살렘은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었으나, 그들은 그 곳 여부스 족속을 추방하지 못하고 동거했다. 점차 그
민족을 다시 장악하고 주변에는 견고한 성곽을 쌓고 외족의 침략을 방어하고 있었다. 다윗왕은 두 차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다.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반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는 구약의 왕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는 다윗의 왕위가 영원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윗과 예수의 관계는 혈통적 계승과
예언적 성취로 요약할 수 있으며,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왕으로 이해된다.
첫째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됩니다. 이는 예수의 탄생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이어진 혈통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둘째, 왕의 계보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왕위를 영원히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 약속은 다윗의 왕조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이며, 사도행전 13장 22-23절은
이 예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고 설명한다.「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셋째,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그 왕국이 이 땅의 왕국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영원한 왕이시다. 이는 영적인 의미로서 말하는 왕국을
말한다.
넷째, 메시아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아, 곧 왕으로 고백한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성경적 맥락에서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마가복음 12장 36-37절『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서라 하셨도다 하셨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이는 시편 110편 1절의 내용으로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이 내용은 세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여호와와 내 주와의
관계, 둘째,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셋째,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있으라 라는 것이다.
마가는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말하는 내 주는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므로서, 구약시대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2000년 전의 인물이다.
요한복음 8장 55-59절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도 지냈다고 했다.『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성경은 바로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다윗은 메시야를 나의 주님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찌 자신이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라고 반문하셨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맞지만, 영적으로는 메시야(그리스도)로서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다윗의
행적을 통한 그리스도의 영적인 계시
다윗은 사울의 시대로부터 왕으로서 다윗까지 장군으로서, 왕으로서 이민족과의 전쟁, 내부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 반란으로 인한 국가의 분열 위기 등이 있었으나, 그것을 극복하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서 국가를 건설하고 그들의 민족으로부터 칭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역시
내 마음에 맞는 자라고 말씀하 주셨다.
다윗의 이러한 모든 행적이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영적으로 계시되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생각하면, 이민족의
침입을 생각하지만, 사실 영적로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육적 자아와의 싸움으로 말할 수 있다. 성도의 영적인 성장과 갈등 역시 자가 자신과의 싸움의 결과이다.
(골리앗과의 싸움)
사무엘상 17장에는 네피림처럼 거대한 골리앗이 등장한다. 골리앗은 자신이 가진 힘과 무기를 믿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모욕한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향해 외친다. 사무엘상 17장 9절「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이처럼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이 골리앗으로 대표되는 원수의 세력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게 된다. 이때 다윗이 아버지의 명을 받고 양식과 안부를 전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여 말씀의 양식과 안부 곧 원어로 샬롬인 평강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왕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며 승리를 얻어 백성을 구원함으로 평안을
주는 것이다. 이때 다윗이 골리앗과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도구는 사울이 준 투구와 갑옷과 칼이
아니었다. 초라해 보이는 막대기와 물매와 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보기에 이보다 더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리고
다윗의 승리가 백성의 승리로 이어짐을 통해 보여주듯, 그리스도의 승리는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죄와 싸워
이길 힘을 줌을 나타낸다.
(다윗이 아말렉 족속에게 가족들과 재산을 약탈당한 사건)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서 아말렉 사람과 그 가축들을 다 진멸하라
명하셨으나 이에 순종치 않았다. 이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며, 왕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스라엘 역시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긴바 된다. 그 남은 아말렉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없는 사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여인들과
자녀들을 사로잡아 간 사건이 사무엘상 30장이다. 이에 슬프고
화가 난 부하들이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 다윗은 그때도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 뜻에 순종하여 아말렉 군대를 추격해 승리하여 잃어버린 것 없이 모든 것을 되찾았다. 다윗이 잃어버린 것 없이 모든 것을 되찾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회개하여 돌이켜, 택함을 입는 자들을 하나도 잃은 바 없이 모두 사탄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임을 예표로 보여주는 것이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를 다시 찾아오는 모습)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다시 찾아온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모든 백성에게 떡과 고기와 건포도를 나누어 준다. 다윗을
통해 보듯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는 첫사람 아담이 나누어준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언약궤를 빼앗기고), 다시 부활로서 영의 몸인 새생명(언약궤를 찾는 것)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새생명
가운데 있게 해 주신다.
(압살롬에게 쫒기는 다윗)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감람산길을
맨발로 울며 오른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백성들의 버림을 받아 쫓겨 가는 모습이다. 다윗은 비록 죄의 열매를 먹고 있으나 하나님이 택하신 왕으로써 백성들에게 버림받는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
다윗을 향해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푸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조롱했다. 그러던 시므이가
다윗이 왕위를 되찾아 돌아가는 길에 찾아와 용서를 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듣고
회개하여 돌이키는 것이다.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사건)
왕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적에 맞서
군대를 조직하고 전쟁을 수행한다. 왕의 승리는 백성에게 풍요와 기쁨과 평안을 준다. 왕은 질서를 위해 재판하고 법을 집행한다. 그리고 특권으로 통치권내의
백성들의 죄를 사면할 수 있다. 그리고 왕은 그 백성을 보호하고 백성을 위해 죽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이 사건은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에 초점이 있다. 백성에게 임할 심판을 보며
자신에게 벌을 내려주기를 구하는 다윗의 간절한 청에 하나님께서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타작마당을 값을 주고 사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친다.
예수께서 백성을 위해 자신을 번제물과 화목제물로 드린 곳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있던 그곳이다. 번제물의 육체가 영문 밖에서 불사름 당함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히브리서 13장
11-12절「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이는 자신의 피와 살로 그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다윗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나라는 권력과 백성과 땅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세상 나라는 사람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지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다. 세상의 권력과 하나님 나라의 권위는 다르며, 하나님의 백성 또한 세상 백성과는 구별된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그 왕국에 대한
약속이 다윗과 다윗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 언약은 어떤 조건이나 단서가 붙지 않는 은혜의
언약이다. 우리의 구원이 어떠한 우리의 공로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은 것임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 은혜의 언약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그의 나라가 견고하여짐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실체로서의 성취는 다윗의 씨이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이며,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왕이신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로 인해 성도 역시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천국(하나님 나라)을 누리고 있다. 천국은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하며,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 하늘에 앉히심을 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성도의 삶 가운데 누리는 천국과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다윗을 통해 성취되었다. 다윗의 계속되는 승리를 통해 백성들은 두려움과 구속에서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충분히 만족하며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그리고 그 승리 위에 영적으로 새성전이 지어진다.
천국(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 또한 순복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또한 권위질서에 대한 순복으로 이어진다. 요압은 그 마음으로부터
순종치 않았을 때의 결과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경은 다윗왕국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보여준다. 다윗의 용사들이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의 모습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교만으로 불순종한 요압이나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비웃는 미갈, 앙심을 품은 압살롬 등이 그 예이다.
성도의 왕이신 예수께서는 성도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예수 안에서 우리 또한 승리를 누리게 하시려고 부활 승리하셨다. 성도 역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다. 그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죄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비결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 가운데 있을 때 성도는 천국(하나님의 나라)을 충만히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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