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레위기에서 그리스도

 

5. 레위기에서 그리스도

 

(1) 희생제사 제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코르반(קָרְבַּנְ7133)7126에서 유래;제단 ‘가까이 가져온’(어떤), 즉 희생‘예물’:-제물, 예물, 봉헌된것, 봉헌물로서, 제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앞에 라는 리프네(לִפְנֵ֥י)는 얼굴 앞에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종류가 다섯가지였다. 번제, 화제, 속죄제, 속건제, 소제였다. 번제는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였다. 다른 제사는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먹기도 하고, 나누어 막기도 하지만 번제는 그렇지 않았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עֹלָ֤ה)인데, 올라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물을 태워서 그 향기를 하나님께로 올려드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제사 의식이 예배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동물을 죽여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죽은 희생제물이 바로 자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제물과 죄인은 서로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헤서 『나는 제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예배는 어떤 형식적인 순서를 통해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설교하고, 헌금하는 것을 예배라고 하지만, 예배의 의미는 희생제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곧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예배인 것이며, 날마다 이것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말했다.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소와 양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소나 양은 정한 동물로서 되새김질 하고 굽이 갈라진 짐승이다.

레위기 11 44-45절에서『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구별되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이다. 구별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해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구별(거룩)을 강조하신 이유는 모든 인간들은 거룩하지 못한 존재라는 것이다. 즉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멸해질 때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멸해지는 것인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 라는 존재가 멸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신약에서 자기라는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는 하나님께 구별된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통해서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도록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할례의 의미도 모른채 형식적 할례를 하고 있었다. 할례는 육적 죽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육적 죽음을 통해서 장래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정작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을 때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레위기 11장에서도 동물을 통해서도 구별을 강조하셨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나누신 것이다. 이 동물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별을 의미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닌 자를 대변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천하만민의 모델로 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단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멸해지는 모든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릴 때 숫소를 태워드렸다. 죄인들의 생활 능력에 따라 양이나 염소, 비둘기도 바쳤다. 구약성경의 율법에 따라 규정한 예물의 규정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십일조를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 속에 있으므로, 율법이 규정하고 잇는 십일조가 아니라, 헌금으로 영을 살리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물은 다 불태워졌다.『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불태워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멸하여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네가지의 조건이 있다. 첫째 흠없는 숫컷이다. 이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헌신을 엿볼 수 있다. 흠 없는 숫컷으로 드려졌다. 흠이 없다는 것은 1년 된 동물을 지칭하지만, 베드로전서 1 19절에서『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는 어린양이 되는 것이다.

회막 문에서 라는 말은 성전에서 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전은 오늘날 성도의 심령 중에 세워지는 성전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임재는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안)을 의미한다. 문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문이다.

하나님 앞이라는 말에서 리프네 야훼(לִפְנֵ֥י יְהוָֽה׃)리프네(~앞에6440) 야훼(여호와)에서 리프네는 얼굴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면전에서, 대면하여) 라는 것이다. 성도 역시 임마누엘이 되는 자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이다. 이렇게 임마누엘이 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אֶל־פֶּ֝תַח אֹ֤הֶל מֹועֵד֙ יַקְרִ֣יב אֹתֹ֔ו לִרְצֹנֹ֖ו לִפְנֵ֥י יְהוָֽה׃) he shall offer it of his own voluntary will at the door of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before the LORD. (kjv) 여기에서 드릴지니라 라고 번역되었지만,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his own voluntary will』자발적인 자신의 의지를 드리는 것이다. 희생제물은 죽는 것이다. 자발적 의지를 드린다는 것은 자기를 모두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것을 말한다. 희생제물과 연합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체의 그림자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2) 다섯가지의 제사

 

번제

번제는 죄를 대속하는 속죄물로서 제물을 태워드리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불세례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레위기 14-5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죄인이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한다는 것은 죄를 전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제물을 잡아서 제사장이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에 뿌린다. 죄인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그 다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래서 율법을 어겨 죄를 지을 때마다 이렇게 제물을 잡고 피를 뿌리는 것을 행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였으나,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자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기독교인이라고 칭한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율법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하나님께 돌이키고자 했으나 여전히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자들이다. 율법의 대표격인 십계명을 바라보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자기를 스스로 점검하고 조금이라도 죄를 지으면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유형은 성막의 마당뜰에서 왔다갔다 하는 자들이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제물에 전가하고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이 행위를 한다. 그러나 율법의 단 하나라도 어기면 안되는 것이다.

이들은 성막의 마당을 밟지만 죄의 종들이다.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의식만 행하는 자들이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다를바가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되는 것으로 믿었지만,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두번째 유형은 제사장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왔는데, 처음에는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소의 마당을 왔다갔다 하다가, 희생제물을 죽이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그 제물이 곧 약속의 씨라는 것을 깨닫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이 아브라함이 만난 멜기세덱의 영원한 대제사장임을 깨닫는 자들이다. 자신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단번에 사하심을 받는 것을 알았다. 제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며 제물이 불에 타 죽는 것은 곧 자신이 불에 타 죽는 것을 깨닫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하나님이 불심판을 내리신 것처럼 자신도 불에 타 죽었음을 믿는 자가 된다. 노아 시대 홍수로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세례요 물세례인 것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된다. 제사장 그룹은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자를 의미한다.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하나님 나라가 그에게 임하는 것이다.

세번째 유형은 대제사장이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난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떨기 나무 불꽃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호렙산(시내산)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과도 같다. 떨기나무는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고, 불꽃은 성령이다. 비록 육체라 할지라도 성령이 임하시면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이다. 임마누엘이 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것 처럼, 성도에게도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신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계시를 해주시고, 치유의 능력도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도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러한 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게되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다. 성도 중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가끔 등장하지만, 하나님의 은사를 마치 스스로 신적인 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처럼 교만에 빠져 비진리로 나가는 자들이 있었다.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키지만, 영지주의에 빠져 자신이 신성을 가진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②소제

소제는 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을 표현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이는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드렸던 5대 제사 중 유일하게 피를 흘리지 않고 곡식 가루나 떡으로 드렸다는 특징이 있다

레위기 21-2절『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의 소는 흰 것을 의미한다. 제사에 사용되는 밀가루가 하얗기 때문에 소제라고 표현한다. 다섯가지 제사 중에서 피흘림이 없는 제사다. 그래서 곡식이 제사에 사용된다. 소제는 제사장을 임명할 때, 성막을 짓고 봉헌할 때, 나병환자가 병을 치유하고 난 뒤에 드린 제사다. 소제는 성도의 삶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다. 즉 의의 옷을 입은 거듭난 자의 삶을 나타낸다.

소제는 고운 가루로 드렸다.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6 7절에서처럼, 죽어야만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고운 가루가 되는 것을 스스로의 결단과 고난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고운 가루로 옛것이 죽으면, 성령으로 하늘로 부터 태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유향은 향기로운 기도를 나타낸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83절에서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성소의 제단은 번제단과 분향단 두개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제단은 분향단이다. 분향단에 향을 피우는 것은 기도를 의미한다. 

지성소에는 거룩한 자만 들어갈  있는 것이다. 지성소에서의 기도는 하나님과 서로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분향단에서는 하나님이 명하신 바대로 향을 피워야 했다. 오늘날 분향단은 십사만 사천이 되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사람이 분향단이 된다. 기복신앙으로 기도하는 것은 다른 향을 피우는 자가 된다. 기도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직 땅의 기도만 한다면 죽은 자의 기도이다. 이미 자기의 상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8 4절『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올라가게 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것을 향을 피우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다. 기복신앙에서 비롯된 기도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③화목제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화목, 감사, 그리고 이웃과의 교제를 위해 드렸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죄로 인해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제물을 나눈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잔치를 나누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레위기 31-5절「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화목제는 히브리어는『쉘라밈  שְׁלָמִ֖ים , 기본형은 쉘렘』이라고 한다. 샬롬에서 파생된 말이다. 교제하는 제사를 말한다. 화목제가 번제나 소제와 다른 것은 의무적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다.

번제는 태워서 바치므로 남는 것이 없다. 소제는 일부는 태우고 일부는 제사장에게로 간다. 화목제는 일부는 하나님께, 일부는 제사장에게, 그리고 많은 부분은 사람들이 함께 먹는 것이다.

화목제사의 특징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화목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로마서 12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죽은 영을 살리기 위해 일을 하라는 것이다.

레위기 312-13절「만일 그의 예물이 염소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것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화목제로 드릴 때, 소나 양은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없는 것으로 하지만, 313절에서 염소의 경우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그러나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화목제를 드리고자 하는 자는 암수에 관계없이 흠 없는 가축(소나 양이나 염소)을 여호와 앞으로, 즉 회막 문 앞으로 가지고 왔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제물의 머리에 안수했다. 안수가 자신을 제물과 동일시하는 상징적 행위라는 점이다. 

화목제 의식은 안수 한 후에 동물을 잡았다. 제사장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토막 내는데, 이것은 레위기 3장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번제로 유추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번제와 동일하게 화목제 의식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화목제가 번제와 다른 점은 번제가 동물 전체를 제단 위에서 태운 것과는 달리, 화목제는 내장을 덮고 있는 기름과 콩팥을 덥고 있는 기름, 그리고 간 주위에 있는 기름만을(양으로 드릴 경우 꼬리의 기름까지)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로 태웠다는 점이다.

화목제 의식은 제사를 드리는 자와 함께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는 가족들이 그 나머지 고기를 먹는 성스러운 식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래서 신약의 성만찬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 화목제와 가장 가까운 제도는 성만찬이다. 고린도전서 1125절에서 주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가리키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 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4 8절에 나타나는 옛 언약의 피를 상기시킨다. 

예수께서 제사들과 함께 먹고 마신 최후의 만찬은 이런 면에서 화목제와 유사하다. 성만찬과 화목제의 유사점은 각 식사에 참여하는 자가 정결해야 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예배자들이 제물을 먹기 위해 정결해야 했던 것처럼 신약에서도 자기 몸을 살피지 않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누리는 거룩한 교제를 드러내는 제사였다. 그래서 화목제는 혼인잔치와 같은 모습이였다.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의 식탁, 즉 제단에서 하나님을 신랑으로, 예배드린 자를 신부로 삼아 먹고 나누는 기쁨의 잔치였다. 화목제는 서로 나눠주는 예물이다( 13:16).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 나누고 확인하는 제사가 바로 화목제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예수의 피 덕분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19)라고 말씀하고 있다.

 

④속죄제

속죄제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이는 부지중에 저지른 죄에 대한 속죄를 목적으로 하며, 죄를 지은 사람의 지위나 재정 형편에 따라 바치는 제물이 달라졌다.

레위기 51절「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개역개정에서 저주하는 소리는『콜 아라(קֹ֣ול אָלָ֔ה )』로서, 아라는 맹세를 의미한다. 재판장이 증인에게 증언해 줄 것을 '맹세시키는 소리'이다. 증인은 그가 본 것과 알고 있는 것을 증언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증인은 법정용어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들의 무리(에다:회중, 총회)로서, 올바른 증언은 언약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 법정에서는 재판장이 증언해 줄 것을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언하지 않아서 그로 인해 진실이 왜곡된다면 그는 그가 증언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죄를 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복음의 말씀을 전해들은 선지자가 거짓으로 증언한다면 죄와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거짓 복음이 듣는 자로 하여금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레위기 52-3절「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구약시대 부정한 짐승이나 가축, 혹은 곤충의 사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몸에 접촉했다는 것은 부정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인간은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속죄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복음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더러워지다』 라는 히브리어는 타메아(טְמֵאָ֗ה 기본형은 타메)이다. 부지중이라는 말은 웨네람(וְנֶעְלַ֣ם 기본형은 아람이다)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였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비진리에 빠져들 것이다. 그 이유는 거짓 선지자들이 비진리를 설교하므로 자신도 모르게 그 가짜 복음에 함몰 될 수 있는 것이다. 허물로 번역된 웨아쉠(וְאָשֵֽׁם׃기본형은 아샴)은 처벌 혹은 배상의 책임이 따르는 범죄였다.

레위기 54-6절「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맹세에 해당되는 것이다. 생각없이 입을 놀려 악한 일을 하겠다 착한 일을 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맹세에 대해서 『지키라』는 것이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십계명의 제 9계명에서도 헛맹세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자원하여 맹세하는 것은 금하지 않았으며, 만약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키라고 명했다.

『자복하고』웨히트와다( וְהִ֨תְוַדָּ֔ה 기본형은 야다) 야다는 내던지다 밖으로 내 놓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다 털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잠언 2813절에서『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속죄제는 히브리어로『하타트』(길을 벗어난다), 헬라어로는『하마르티아』(목표를 벗어난다) 라는 말이다. 죄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범죄에 대해서 드리는 제사가 속죄제다.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암컷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한다. 암컷은 숫컷과 함께 있어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암컷을 제물로 드리므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 영적 산제물로 드린 자가 된다. 로마서 12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레위기 57-10절「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비둘기는 제물로 사용되었는데, 가난한 자가 이를 사용하셨다. 누가복음 224절에서『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의무적으로 드리는 속죄제물과 자원제인 번제물을 동시에 드릴 수 있도록 했다. 속죄제물은 말 그대로 죄에 대해서 속죄하기 위해 드리는 제물이다.『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모습이다. 죄인은 이렇게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모양으로 죽으셨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함께 연합하여 죽어야만 그 죄인이 죽은 것이다.

레위기 511-13절「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십분의 일은 십일조와 같은 개념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자기의 전부를 드렸다는 표현이다. 성경의 부피 단위 중 에바(אֵיפָה, Ephah)는 ‘바구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 바구니에 넣을 정도의 양이며 스아와 마찬가지로 가루나 볶은 곡식 등을 재는 단위다. 22ℓ에 해당한다. 12되와 같은 양이다.

소제의 경우는 기름과 유황을 넣어서 화제로 드리도록 했는데, 속죄제는 기름과 유향을 넣지 못하도록 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 유향은 기도를 의미한다. 소제와 속죄제를 비교하면, 소제는 다섯가지 제사 중에서 피흘림이 없는 제사다. 그래서 곡식이 제사에 사용된다.

소제는 제사장을 임명할 때, 성막을 짓고 봉헌할 때, 나병환자가 병을 치유하고 난 뒤에 드린 제사다. 소제는 성도의 삶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다. 즉 의의 옷을 입은 거듭난 자의 삶을 나타낸다. 그러나 속죄제는 죄 사하심을 얻기 위해서 하는 제사이므로 이러한 것들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제물은 다 불태워졌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과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것을 태워버리라고 하신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제물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불세례와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된 자는 자신도 성령의 불에 태워져 죽는 것이다. 자신이 불에 태워져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또한 성령으로 부활시켜 새생명을 주시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하나님께 드리고 남은 소제물은 제사장에게 양식이 되었다. 남은 것은 남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사야 19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남은 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⑤속건제

속건제는 히브리어로『아샴』이라고 하며, 죄책, 보상, 배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제사는 죄인이 사람들(이웃)에게 손실을 입혔을 때, 제사를 통해서 제물이 드려졌다. 이 속건제의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것에 포함되는 것이다.

속건제는 부주의로 성물을 범하는 경우(5 14-15) 드렸는데, 성물은 거룩하게 구별된 물건을 말한다.『구별되다』라는 말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소멸되어 지는 것이다. 먹지 말아야 할 사람이 제물을 먹었을 때,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드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성물을 범한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이 교회가 성전이고, 교회 안의 물건들이 성물로 적용될 수 있으므로, 피해를 입히면, 성물을 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물이 아니라 교회 물건에 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특히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면서 구약의 십일조가 신약의 십일조의 정신과 같은 개념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 반드시 바쳐야 한다고 말을 한다. 이것도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속건제를 드릴 때, 레위기 515-16절『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보상을 통해서 죄가 심각한 것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건물이 성전도 아니고, 교회 내에 물건도 성물이 아니며, 따라서 교회와 교회 건물 안에 있는 물건을 훼손했을 때는 각 나라의 법에 따라 보상해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십일조도 율법에 해당되므로, 성도들은 교회의 운영을 위한다면 헌금으로 되어야만 한다.

두번째, 여호와의 계명을 범하는 경우(5 17) 속건제를 드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장래에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이 율법에 대해서 말하기를『율법을 지키므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서 벗어났으므로 율법과는 상관없는 자가 된다.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는 자가 되어야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3) 제사장에 대한 규례

 

레위기 8-10장은 제사장의 성결에 관한 내용이다. 8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관한 규례이며, 9장은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에 대한 내용이고, 10장은 제사장 직을 잘못 수행했을시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서 5 4절에서『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아론이 첫번쩨의 대제사장이었다. 아론의 아들들이 이어서 제사장이 되었다. 제사장직에 위임받는 것은 존귀한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신약시대의 제사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다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인 제사장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제사장이 위임하실 때 요구한 사항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로 씻어야 하고, 거룩한 새 옷을 입어야하고,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물로 씻는다는 것은 정결의식이라기 보다, 죽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한 개인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쓰임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례(침례)의식을 할 때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은 자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의 몸이 흰 옷으로 표현된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자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29 4절에서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물두멍에서 전신을 씻는다.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세례의식과 같은 것이다.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을 때는 손과 발을 씻는다.

레위기 87-9절『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걸쳐 입히고 에봇의 장식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 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제사장이 위임받을 때 옷을 입어야 한다. 에봇이라는 조끼를 입었는데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보석이 붙어 있었다. 또한 흉패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큰 보석을 넣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 보석의 색깔을 통해 응답을 해 주셨다. 이러한 제사장의 옷은 제사장의 모든 죄를 가려주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옷이었다. 제사장의 옷이 제사장의 죄를 가려준 것처럼 성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의 보혈로 죄가 하나님 앞에서 씻음을 받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 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머리에 관을 씌우는 것은 죄인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 5절에서『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신령한 집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영의 몸을 의미한다. 산 돌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성도가 영의 몸을 입고 직접 예배를 드리게 된다.

레위기 8 10-13절『모세가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고 모세가 또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웠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세번째로 관유를 바른다.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이 성도들에게 인치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론은 제사장의 옷을 입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유, 즉 기름 부음을 받아 비로소 제사장으로 효력을 지닐 수가 있었다. 신약 시대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론은 온 인류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모형이다.

그러나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의복을 입고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즉시 제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에 지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제사를 드려야만 했다.

레위기 8 14-17절『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속죄제의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제단의 네 귀퉁이 뿔에 발라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그 피는 제단 밑에 쏟아 제단을 속하여 거룩하게 하고 또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꺼풀과 두 콩팥과 그 기름을 가져다가 모세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송아지 곧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은 진영 밖에서 불살랐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세 가지 제사 중 첫 번째 제사는 속죄제였다. 속죄제를 드려 자신부터 정결하게 된 제사장은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내장, 간 콩팥의 기름은 진영 안의 제단에서 불사르고, 기름은 성령의 불을 상징한다. 성령의 불은 새롭게 하는 부활을 상징한다.

내장과 간 콩팥의 가죽, 고기, 배설물은 진영 밖에서 태웠다. 레위기 6 11절에서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아침이 되면 이 재를 버려야 하는데 이런 옷을 입고 번제단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재를 버릴 때는 다른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이때 제사장은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에 버렸다. 예수님은 죄에 대해서 죽으신 것이다. 진영 밖에서 태우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기 818-21절『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모세가 잡아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그 숫양의 각을 뜨고 모세가 그 머리와 각 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물로 내장과 정강이들을 씻고 모세가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두 번째로 드릴 제사는 번제였다. 번제는 제물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우는 것이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עֹלָ֤ה)인데, 올라가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물을 태워서 그 향기를 하나님께로 올려드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제사 의식이 예배였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번제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살고 세상에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죄인은 희생제물에 안수하고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제물을 통해서 죄사하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함이었다. 제물은 가장 좋은 흠없는 숫송아지를 가지고 와서 죽이고 각을 뜨는 것은 자기가 죽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죽은 제물이 바로 자기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물로 그 내장(케레브)과 정강이를 씻고』케레브는 사람이나 동물의 “내장”, “속” 또는 “창자”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이 단어는 “안에”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며, 그 내장(7130)과 정강이(3767)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과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것을 태워버리라고 하신다. 즉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정강이(ּכְרָעָ֖ 케라)(3767)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걸어가는 자를 의미한다. 네피림과 같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로 씻을 것이요(7364)』에베소서 525-26절에서『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물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나는 것은 물에서 죽은 자이고, 성령의 불로 태워 죽은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부활)을 의미한다. 이전의 옛사람과 자기의 의가 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4) 언약과 성결에 대한 규례

 

레위기 21장과 22장은 제사장들의 거룩한 삶에 대한 말씀이며, 6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으로 구분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라는 말씀이 여섯 단락의 결론 부분에 반복되어 기록되었다. 그리고 레위기 22 31절에서 33절까지의 말씀은 레위기 21장과 22장의 전체적인 결론 부분에 해당된다.

22
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레위기 22 1절에서 9절까지이다. 여기서 제사장들이 여러 가지의 경로를 통해 부정하게 될 경우에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제사장들은 피부병 환자와 접촉하거나, 죽은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부정하게 된다. 부정해진 제사장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죽을 수 있다고 9절 말씀에서 강하게 말씀하셨다.

두 번째 부분은 레위기 22 10절에서 16절까지인데,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제사장의 음식을 결코 먹어서는 안 되는 경우를 다루었지만,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제사장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다. 제사장의 음식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가족들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에는 집 안의 종들도 포함되었다. 또 출가한 딸은 어떤 경우에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레위기 22 17절에서 33절까지이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경우에, 흠 없는 짐승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경우에, 반드시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25절에서는“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의 음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레위기 222절『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성물에 대한 규례이며, 제사장이 먹는 것이 성물이다. 성물은 하나님 앞에 바쳤던 제사 음식이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와서 제사장은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이 제사장이 된다. 성도가 제사장으로 먹어야 하는 성물은 예수의 살과 피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죄에 대해서 죽고, 혼에 대해서도 죽은 자임을 의미한다. 살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위기 223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제사장은 먼저 먹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먼저 부정함이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켜서 죄를 짓지 않으면 거룩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죄를 지어도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거룩은 하늘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죽은 자, 곧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6-7절『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레위기 224-7아론의 자손 중 나병 환자나 유출병자는 그가 정결하기 전에는 그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나 설정한 자나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모든 사람과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것에게 접촉된 자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야 그 성물을 먹을 것이니라 이는 자기의 음식이 됨이니라』

나병(문둥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는 병으로 인식되어 성 밖에 격리되어 살았다. 따라서 제사장이 이 병에 걸릴 경우 그 역시 병이 다 나을 때까지 제사장 직무 수행이 엄격히 금지 되었으며, 다 나은 후에야 비로소 직무에 임할 수 있었다. 나병은 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격리되는 것이다. 불살음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할 질병이다. 나병은 부정한 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정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의 죄의 속성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나병환자의 부정함을 통해서 너희들은 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부정한 자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유출병에 대해서, 레위기 15 2절에서『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바사르)에 유출병(자브)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라고 한다.

דַּבְּרוּ֙ אֶל־בְּנֵ֣י יִשְׂרָאֵ֔ל וַאֲמַרְתֶּ֖ם אֲלֵהֶ֑ם אִ֣ישׁ אִ֗ישׁ כִּ֤י יִהְיֶה֙ זָ֣ב מִבְּשָׂרֹ֔ו זֹובֹ֖ו טָמֵ֥א הֽוּא׃

자브( זָ֣ב  기본형은 주브)기본어근이 (물같이)자연스레 흐르다, (특히)(성기의) 하혈하다 상징적으로 써버리다 또한 넘치다, 흐르다, 솟아나오다 (계속)유출하다, 쇠약해지다, 뛰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이 유출병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에 따라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유출병에 관한 규례를 레위기 15장에서는 네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는 남성의 부자연스러운 유출이다. 둘째, 남성의 자연스러운 유출이다. 셋째, 여성의 자연스러운 유출이다. 넷째, 여성의 부자연스러운 유출을 규정하고 있다. 한글 개역개정에는 유출병으로 번역하므로 성병을 생각하게 한다. 이 유출이 바사르로 부터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미브샤로우(מִבְּשָׂרֹ֔ו 기본형은 바사르)는 몸으로부터 이다. 바사르는 신선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나, 사람, 인류, 벌거벗음, 자아 등의 의미를 갖는다. 영어의 번역을 보면 fresh(kjv), body(niv)으로 번역되었는데, fresh는 육적 몸으로 번역된다. body는 살덩어리이다. 육적 몸은 육체로부터 나타나는 종교심, 자아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은 자기를 위한 종교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로부터 기쁜 소식을 받게되지만, 자기를 위한 신으로 생각하면, 그게 선악과를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벌거벗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레위기 1510절에서는 유출병의 부정하게 된 것을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라고 말을 한다. 옛사람()에 대한 죽음과 혼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에 대해서 레위기 21장에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크게 세가지로 대별된다. 첫째,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몸의 정결에 대해서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시체, 죽은 자는 표면적으로는 육적 죽은 자를 가리키나, 여기에서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

만일 시체를 만지게 되면 칠일간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늘의 안식이 없는 것이다. 칠일은 창조의 칠일을 의미하듯이, 세상에 갇힌 자의 모습인 것이다. 세상에 갇힌 자는 안식이 없으며, 성소에 들어갈 수 없는 자가 된다. 그러나 칠일째가 되면, 곧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안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제사장의 가족이 죽었을 때는 허용되었다.그의 살붙이인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나 그의 아들이나 그의 딸이나 그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그의 자매로 말미암아서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시체인 예수와 연합되어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이 거룩한 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이 때 제사장은 하루 동안 부정했으며 부정을 입고 있는 동안은 성물을 만지거나 먹을 수 없었으며, 몸을 씻고 하루가 지나야 다시 성물을 먹을 수 있었다. 몸을 씻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음을 표현한 것이다. 물세례이다.

설정한 자에 대해서, 설정이란 남자가 무의식 중이나 혹은 몽정 등으로 인해 정액을 분비한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설정을 한 자는 표면적으로, 율법상 그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왜냐하면 이때 흘러나온 정액은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의 육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인간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분비물, 즉 피나 정액, 침 등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는데, 그것은 외적 정결을 통해 내적 정결의 교훈하려 했기 때문이다.

육체적 부정과 환경적 부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영적 제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로마서 12 1-2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예배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박히는 것을 말한다. 무엇인가 열심히 선한 마음으로 봉사하고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옛사람이 죽으라는 것이다.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야 그 성물을 먹을 것이니라』씻는 것은 더럼움을 씻어 정결하는 의미가 아니라 씻는 것도 죽는 것을 의미한다. 물로 세례의식을 하는데, 이는 죄를 씻는 의식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레위기 228절『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시체나 죽은 짐승은 부패한 음식이 된다. 이는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의 마음이다. 겉으로는 음식이지만, 속이 상해 있는 죽은 짐승이라는 것이다.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팔아서, 값을 주고 사는 교회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율법을 따르려고 하며, 죄 가운데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을 개와 돼지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사해졌지만, 율법에 근거해서 다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판단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개와 돼지들이 교회를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레위기 229그들은 내 명령을 지킬 것이니라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그 가운데에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그것을 속되게 하면 표면적으로는 제사장들 중 부정을 입은 자가 만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규례를 어기고, 성물을 만지거나 먹게 되면 결국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 성물 자체가 부정케 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부정한 자가 성물 더럽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룩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죽게 된다.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도 않으면서(죄인의 상태),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믿으면서, 예수의 피를 마시고 예수의 살을 먹는 성찬에 참여하면, 그는 죄를 마시고 먹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여전히 죽어야 할 육의 상태로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연합되어 죽었다는 것은 거룩한 자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제사장이 여러 가지의 경로를 통해 부정하게 될 경우에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고 있다. 제사장들은 피부병 환자와 접촉하거나, 죽은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부정하게 된다. 부정해진 제사장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죽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더 이상 영적으로 죽은 음식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의 음식은 하늘의 음식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오신 분이다. 부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그도 역시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레위기 2210-11일반인은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의 객이나 품꾼도 다 성물을 먹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사장이 그의 돈으로 어떤 사람을 샀으면 그는 그것을 먹을 것이며 그의 집에서 출생한 자도 그렇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음식을 먹을 것이며』

제사장과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규례다. 제사장과 한 집에서 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찬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먹고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를 마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 곧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피값으로 샀기 때문이다. 피값으로 사서 생명의 부활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음식을 먹게 하신다.

레위기 2212-13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거제의 성물을 먹지 못하되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제사장의 딸이 출가하였으면, 먹지 못하지만, 친정으로 돌아오면 먹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과부, 가난한 자, 맹인, 세리 등과 같이 자신이 죄악인임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마음을 돌리는 것은 회개하여, 자신이 하나님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임을 고백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가 된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죄인이었지만,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오듯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늘의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선악과를 먹었지만, 이제는 생명과실을 먹게 된다.

레위기 2214만일 누가 부지중에 성물을 먹으면 그 성물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지니라』

 사람이 부지중 성물을 먹으면 여기서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אִ֕ישׁ)는 제사장의 가족이 아닌 모든 이스라엘의 일반 백성을 가리킨다. 그리고'부지중'(ִּשְׁגָגָ֑ה 비쉬가가, 기본형은 쉐가가)이란 말은 '무심히, 실수로, 깨닫지 못하고 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만일 자기가 먹어서는 안될 성물인 줄 알고도 고의로 먹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음의 형벌을 면치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연합의 의미를 모르고, 성찬에서 그 분의 피를 함께 마시고, 그 분의 부활을 상징하는 살을 먹는다는 것은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다. 성물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성물에 대해 범죄한 경우에는 속건제의 규례를 따라야 했다. 따라서 이 경우 범죄한 사람은 속건제를 드려야 했으며 또한 배상금 형태로 성물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주어야 했다(레위기5:14-16).

속건제 대한 규례는 레위기 5 14-19절에서부터 7장까지 이어진다. 속건제는 히브리어로『아샴』이라고 하며, 죄책, 보상, 배상의 의미를 갖는다.

레위기 5 14절부터 6 7절에 의하면 속건제는 특별히 십일조나 헌물을 도적질하는 등 하나님의 성물에 대하여 범죄 하였거나, 다른 사람에게 범죄 하여 남의 물건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그 물건의 가치에 5분의 1, 20%를 더하여 배상을 한 후에 그 범과에 요구되는 흠 없는 수양을 속건 제물로 드려 속죄하는 제사였다. 

오분의 일은 100분의 이십을 의미한다. 십과 십이다. 십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의미하며, 나머지 십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나를 드리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 죄의 근원이다. 죄에 대해서 죽는 자가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를 드리는 것에 대해서도, 10이라는 숫자는 전체를 의미한다. 20이라는 숫자는 전체를 두번 상징한다. 하나는 죄에 대해서, 또 하나는 육의 몸에 대해서이다. 죄에 대해서 갚아야 하는데, 그것은 곧 예수와 함께 죽음이다. 물세례로 표현한다. 나머지 하나는 육의 몸에 대한 죽음이다. 불세례를 의미하며, 이전의 옷을 벗는 의미를 갖는다.

레위기 2215-16절『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을 그들은 속되게 하지 말지니 그들이 성물을 먹으면 그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할 것이니라 나는 그 음식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성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물을 먹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물을 먹은 자는 다시 하나님이 거룩하게 해주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있을 때 부활하였음을 믿는 자가 거룩한 자가 된다.

레위기 2217-20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흠없는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은 흠없는 제물이 될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가 흠없는 제물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그리스도와 연합하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 26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레위기 2221-22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화목제는 여러가지 목적으로 드렸다. 첫째, 서원이 필요할 때 드렸다. 두번째는 감사할 내용이 있을 때 드리는 제사였다. 세번째, 하나님께 사랑과 기쁨을 표현할 때, 드렸다. 우리말로 낙헌제로 표현되었다. 여기에서는 서원제와 자원제에 대한 설명이다.

레위기 714절에서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거제(트루마)는 제물을 높이 들고 아래로 내리는 방법의 제사다. 화목제와 땅의 첫 소산물,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쳤다고 다시 받는다는 의미이다. 헌신과 감사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릴 때 사용한다. 레위기 7:32 『또 너희는 그 화목제물의 오른쪽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거제는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의식이요 그리고 다시 돌려받는 의식이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자기라는 존재가 멸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라는 존재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혼인 것이다. 그래서 그 혼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돌려 받는 것은 새생명인 영의 몸을 돌려 받는다. 이게 부활인 것이다.

2222절은 여호와께 희생 제물로 드려서는 안될 흠 있는 짐승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처럼 제물로 바칠수 없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첫째, 완전한 제물의 드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자신의 성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둘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처럼 모든 부정으로부터 먼저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함을 교훈하기 위함이었다.

상한것은 부러지다, 상처를 입다 라는 뜻의 솨바르(שָׁב֜וּר)에서 파생된 말로, 곧 지체의 어느 부분이 부러졌거나 혹은 큰 상처를 입음으로 해서 불구가 된 상태를 의미한다.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은 예리하게 자극하다'란 뜻의 하라츠(חָר֣וּץ )에서 파생된 말로, 곧 팔이나 다리 부분이 절단됨으로 말미암아 병신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 종기 있는 것은 흐르다'(flow)란 뜻의 야베렛(יַבֶּ֗לֶת , 기본형은 야발)에서 파생된 말로, 곧 곪아터져 고름이 흘러나오는 상태를 의미한다. 비루먹은 것 은 히브리어 얄레페트( יַלֶּ֔פֶת )는 버짐이 있는 짐승을 가리킨다.

한편,그러나 여기 열거된 모든 병든 짐승이나 비정상적인 짐승들은 그 자체가 무슨 죄가 있어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나는 것들로서, 곧 죄의 본질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그래서 완전하고 흠없는 제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온전한 제물을 드리는 자가 된다.

레위기 2223소나 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자원제물로는 쓰려니와 서원제물로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리라』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어떤 병이나 상처로 인해 병신이 된 짐승은 아니지만, 몸집이 비정상적으로 작다거나 혹은 사지가 너무 크거나 작은 경우를 가리킨다.

서원제물로는 쓰려니와 원칙적으로 조금이라도 흠 있는 짐승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질 수 없었으나, 특별히 하나님과 예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 특히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드리는 낙헌제(자원제)의 경우에는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것은 장차 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얻을 모든 성도와 하나님 사이에 참다은 화평의 관계가 이루어질 것과 부활한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낸다. 현재적으로 부활을 했으도 육체적으로 인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를 관용하신다. 왜냐하면 살아있을 때 전조를 하라고 하시는 이유이다.

레위기 2224-25너희는 고환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의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하지도 말지며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표면적으로 고환이 깨졌거나, 터졌거나, 잘려나갔거나, 여하튼 고환에 이상이 있는 짐승은 결코 여호와께 드릴 희생 제물로 삼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런 일을 행치도 말지며 라고 말을 한다.  당시 이방인들이 행했던 것처럼 짐승의 고환을 거세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불알은 새끼의 잉태를 위한 수컷의 능력의 핵심으로, 또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것을 거세시키는 것은 새끼를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하는 일로서, 곧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는 범죄 행위로 간주되어 엄격히 금지되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과 땅을 약속하셨는데, 자손은 약속의 씨를 의미한다. 약속의 씨에 대한 유무에 대해서 창세기 62절에서 사람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약속의 씨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제물로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약속의 씨이며, 희생제물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해서 히브리어 네카르(נֵכָ֗ר)는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순수한 타국인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음식은 곧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 제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고기를 제단에서 태우는 행위를 마치 하나님께 음식을 대접해 드리는 것처럼 묘사한 말이다.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선지자 말라기는 흠 있는 짐승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멸하는 행동이라고 경책하면서,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1:8).라고 말하고 있다.

레위기 2226-27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짐숭은 생후 8일 이상만 되면 희생제물로 드릴 수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일 년 또는 그 이상된 짐승이 제물로 사용되었다. 희생 제물로 쓰여지기에 합당한 짐승은 최소한 만 7일이 경과한 것이어야 했다. 이레 동안 그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표면적으로는 비록 그 짐승이 하나님께 바쳐질 예물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생후 7일 동안은 그 어미와 함께 있게 하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정신이 깊이 반영된 규례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팔일은 부활의 상징으로서 난 지 8일만에 행하는 할례 의식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이레동안 어미와 함께 있는 것은 옛사람(첫사람 아담:십자가의 죽음)의 표현이며, 팔일은 새사람(마지막 사람 아담:부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레위기 2228절『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집지 말지니라 표면적으로는 인간이 짐승을 잔인하게 잡는 것 금지시킨 규례이다. 당시 이방 족속들 사이에는 미신적인 사상에서, 혹은 식도락적인 취미로 어미와 새끼를 함께 잡거나(22:6,7), 또는 짐승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23:19)잔인한 풍속이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신성할 인륜의 법칙을 깨뜨리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따르지 말아야 했다. 그러므로 이 규례는 결국 하나님의 긍휼이 깊이 반영된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동물의 세계에까지 형성되어 있는 어미와 자식 간의 애정 관계는 신성하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범죄로 인해서 세상에 흙에 갇힌 것이 인간이다. 탕자의 비유와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그들을 심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내세워,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고, 그 분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해서 자식을 살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미와 새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깊히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레위기 2229-30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 그 제물은 그 날에 먹고 이튿날까지 두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감사제물은 화목제 중 감사제로 드린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 그 제물을 당일에 먹고 화목제의 경우 감사제로 드린 희생 제물은 오직 제사드린 그 당일에만 먹을 수 었었다. 그러나 서원제나 자원제로 드린 경우는 그 이튿날까지도 먹을 수 있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데, 완전한 부활을 의미한다. 부활은 마음의 변화가 아닌 것이다. 고기를 일부만 먹고, 그 다음 날에 남기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부활이 아닌 것이다. 거듭남이란 부활과 같은 개념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는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 육의 죽음을 믿는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영의 몸을 입는 것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부활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바뀜이다. 이전의 것은 사라지고(옛사람), 새로운 피조물(새사람)이 된 것이다.

레위기 2231-33너희는 내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

계명을 지키며 행하라 하나님께서 율법을 제정하신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제정하신 목적은 결코 이스라엘을 정죄하거나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약의 백성이 그것을 지켜 행함으로써 당신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지고, 그 결과로써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보기에는 율법이 인류에게 속박과 정죄를 주는 것 같지만, 그 근본 정신에 있어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반영된 것으로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승화, 발전되었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희생제물인 여인의 후손이 오지 않으면, 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므로 의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님은 마귀자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을 경의하고 그 규례와 법도를 잘 지켜 행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이라는 말씀이 들어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는 생명나무가 감추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모든 규례의 이유 및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민 중 친하고 보잘 것 없는 노예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사,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시키시고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바로 그들을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 즉 그들의 거룩하신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와 목적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이방 족속으로부터 분리시키기를 원하셨고, 또한 그 분리시키는 구쳬적인 방법으로써 갖가지 율법을 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여러 규례들을 잘 지키고, 또한 그 규례 속에 내포되어 있는 참된 의미를 올바로 깨닫게 될 때,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요. 자신들에게는 거룩이 되는 것이었다. 거룩은 율법의 규정과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때 거룩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거룩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이전의 죄악을 벗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부활이 곧 거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 여인의 후손을 바라보아야 했지만, 그들은 자기의 의를 더 생각한 것이다.

 

(5) 절기에 대한 규례

 

레위기 23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이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첫해에 기록한 말씀이다. 남자들은 1년에 세번 성전에 와야만 했다. 이스라엘의 주요절기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이다.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을 중요한 절기로 지킨다.

이스라엘의 절기를『모에드』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킨 이유는 첫째, 역사적 의미를 전수하기 위함이었다. 출애굽기 12 24-25절에서 유월절이 끝난 후에 앞으로 절기가 되어 대대로 지켜져야 함을 말하고 있다.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둘째, 절기는 공동체로 하나되게 만들어 주었다. 신명기 6 4절에서『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이스라엘 사람들은 절기에 모일 때 이 말씀을 외쳤다. 신약시대에서도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에베소서 4 3-4절에서『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셋째, 기쁨의 축제였다. 로마서 14 7절에서『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구약의 절기는 신약의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모형이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이제는 절기가 성취된 것이다.

오늘날 구약의 절기를 지키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가 오심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골로새서 2 16-17절에서『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5 8절에서『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라고 말했다. 신약시대는 절기를 지킬 필요는 없지만,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절기가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를 잘 깨닫고 있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인간의 죄악됨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떠난 존재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가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절기와 관련하여 구약시대는 제사와 안식이었다. 제사는 오늘날 예배를 의미한다. 예배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 교회사람들은 예배를『어떤 장소에서 형식된 의식이나 절차를 통해서 행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배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배에서 엄숙한 분위기와 웅장한 찬양소리 속에서 목사의 설교가 감동적이었으면『오늘 좋은 예배를 드렸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라고 생각한다.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안받으셨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으므로『잘 드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건져 내시고, 성막을 주고 율법도 주셨다.

하나님은『율법에 따라서 희생제물을 드려라』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까지 40년 동안을 희생과 예물을 드렸는데, 그런데 아모스 5 25절에서『하나님은 받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어떤 형식과 절차를 통해서 예배를 드렸다』라고 생각한다면 과거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드린 희생과 예물을 받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결과가 될 것이다.

레위기 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안식과 연계되어 있었다. 성경에서 안식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4 8-10절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옛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새생명 가운데 태어난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자기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자기의 일』이라는 말은 바로『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라든가『안식을 대체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아직 안식에 들어간 자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거룩히 지켜야 안식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있지 못한 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레위기 23 4-8『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그 정한 때(베모아담 בְּמֹועֲדָֽם, 기본형은 모에드)에 라는 말은 절기(모애드)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로 곧 지정된 시기에 라는 뜻이다. 유월절(페사흐 פֶּ֖סַח)은 넘어가다'(pass over), 뛰어넘다(skip over)란 뜻의 '파사흐'에서 유래된 말로, 애굽에 내린 열번째 재앙 곧 장자죽음의 재앙시 죽음이 이스라엘 집은 뛰어 넘어간 사실에서부터 유래된 절기이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정월 곧 니산(아빕) 14일 저녁에 지켜졌다. 정월 또는 니산월은 히브리 민간력으로 7월에 해당하는데, 태양력으로는 3, 4월에 해당한다. 한편 이 유월절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한다.

무교절(함마죠트 הַמַּצֹּ֖ות, 기본형은 맛차)은 우유를 빨다라는 의미의 마차츠'에서 유래된 말인데, 발효되지 않은 빵,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빵이란 뜻이다. 따라서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로, 한 주간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는 절기였다. 이처럼7일간 쓴나물과 함께 무교병을 먹는 것은 애굽에서 겪은 종살이의 고통과 출애굽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12:15-20).

한편 본절에는 무교병을 먹는 날 수가 7일로 기록된 반면, 16:8 6일간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본절은 무교병을 먹는 일수에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7일이라고 언급했고, 16:8에서는 '성회' 자체에 강조점을 두었기 때문에 일곱째 날(성회)을 다른 무교병 먹는 날과 구분하여 6일이라고 한 것이다( 12:18). 한편, 성경 여러 곳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12:3-20;13:3-8; 22:1), 그 이유는 2개의 절기 의식이 한 주간 안에 동시에 이루어 졌을 뿐만 아니라, 유월절 음식은 그 자체가 무교병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월절이란 말이 모든 무교 축제일에 걸쳐 사용되었고, 동시에 무교절이란 말이 유월절 의식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면, 유월절은 '초태생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로서 아빕 월 14일 저녁 하룻밤만의 의식을 말하고, 무교절은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로서 14일 저녁을 포함하는 일주일 간의 무교병 축제 의식을 말한다.

무교병은 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가리킨다. 이것은 누룩으로 부풀릴 시간조차도 없었던 첫 무교절의 긴박한 상황을 나타낸다. 아울러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와 거짓 교훈 혹은 옛 생활을 상징하기 때문에(고전 5:5-7),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무교병은 구속받은 거룩한 백성이 먹어야 할 신령한 음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회로 모이고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 7)은 하나님 앞에 성회로 모이는 날이다. 따라서 이 날은 거룩한 안식의 날로 생업에 관계된 모든 육체 노동이 일절 금지되었으며, 거룩한 마음으로 그 절기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면서 기도와 찬양, 묵상 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했다.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 여기서 '노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멜레케트(מְלֶ֥אכֶת기본형은 멜라카) '수고스러운 일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노동이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모든 생계 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일과 반대되는 자기의 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노동은 성회로 모이는 모든 절기 기간 중에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출 20:10 등에 나타난 바 ''(멜라카)은 모든 사소한 일까지 포함하는 말로, 곧 음식을 만든다든가 혹은 그 일을 위하여 불을 지피는 행위 등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일은 특별히 안식일과 속죄일에만 금지되었다.

화제를 드릴 것이요 무교절 기간 동안 하나님께 희생 제물 특히 소제, 번제, 속죄제 등의 제사를 화제로 드릴 것에 대한 규례이다( 28:16-25).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와 하나님 백성이 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레위기 239-14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초실절에 관한 규례이다. 이 절기는 보리 수확의 첫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봉헌하는 절기로, 무교절 기간(니산월 15-21)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실시된 절기이다. 따라서 수확한 곡물의 첫단을 제사장에게 드려 요제로 바치는 동시에 번제와 소제 및 전제를 아울러 드리는 이 초실절 행사를 치르기 전에는 누구도 보리 수확의 열매를 먼저 먹을 수 없었다.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에서 팔레스틴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보리 추수는 니산월 곧 현대 태양력으로 3,4월경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수확한 곡물의 첫 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 초실절 행사는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날 행해졌다. 한편 이 곡물의 첫단은 부활의 첫열매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된다(고전 15:20-23).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그 단은 보리단을 가리킨다. 가나안 지방에서 모든 추수는 4월중순경으로부터 5월 초까지 수확되는 보리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은 보리보다 2-3주 후에야 익기 시작했다.

안식일 이튿날에 대해서, 무교절 축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대 종교적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 동안 지켜졌다. 초실절은 바로 이 무교절 기간 중에 지켜졌는데, 그 정확한 일자가 언제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흔들 것이며 제사장이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요제는 하나님께 드리고 다시 돌려받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상징하는 것이다.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상징하는 자원제로, 가죽을 제외한 제물의 모든 부분을 제단에 불태워 드리는 제사이다. 소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의표로 곡식을 예물삼아 드리는 자원제이다. 소제는 보통 번제, 화목제 등과 함께 드려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이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드리는 소제의 경우에는 고운가루 에바 십분 일이 드려졌으나( 29:40), 초실절의 경우에는 그 두 배인 십분 이(2/10)의 고운 가루를 드렸다. 한편 여기서 '에바'는 구약 시대부피를 측정하는 고체량 단위로, 1에바는 23 에 해당된다. 따라서 에바 십분 이(2/10) 4.6 에 해당되는 부피 단위이다. 

표면적으로는 추수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자원제의 것이겠지만, 영적으로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십분의 이에서 일은 이전의 옛사람의 죽음, 두번째 일은 새사람으로 부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고 새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6 7절에서처럼, 죽어야만 모든 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고운 가루가 되는 것을 스스로의 결단과 고난과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노력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을 포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즉 수확한 곡물의 첫 단을 여호와께 먼저 드리기 전에는 그 땅 소산물을 어떤 형태로든지 먹지 말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첫 단의 봉헌은 모든 추수에 대하여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레위기 23 15-22절『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안식후 이틀후였다. 부활절을 초실절이라고 한다. 첫 열매를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 요제는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 무덤이 열리고 부활하셨는데, 그 날로부터 49(칠안식일) 밤부터 그 다음날(50일째) 새 소제(새떡)을 드리라는 것이다. 이게 오순절이다. 오순절은 피가 있는 제사가 아니라 떡을 드리는 날이다. 떡을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다른 제물을 드렸다.

오순절날 제물을 드릴 때 흔들어서 드렸다. 레위기 23 17절에서『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에베소서에서 이것이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떡 두덩이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해서 이방인들도 주께 돌아올 것을 가리킨다. 흔들어서 드리는 것은 부활 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2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정확하게 임하셨다. 구약성경은 신약의 예표요 그림자다. 오순절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돌판을 받던 날이었다. 그날 하나님은 약손 반지를 주었다고 표현했다. 언약의 돌판이 결혼 약속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성령)이 그날 부어졌다. 성령을 받은 자, 곧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부활된 자라는 것이다. 부활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작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혼은 죽고, 영의 몸을 입고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사람의 옷(스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다.

유월절에 대해서는 레위기 23 4-8절에서『이것이 너희가 그 정한 때에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니라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 달 열닷샛날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이레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이레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밤에 출애굽한 날이 음력으로 1 14일이다. 일주일 후에 홍해를 건너는데, 예수님께서 이 날 십자가에 죽으셨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나타내는 날이다.

레위기 23 15-16절에서『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이렇게 봄 절기가 지나고 넉달이 지나서 레위기 23 23절에서 나팔절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애굽에서『출애굽하는 날을 첫달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 때부터 유대인의 달력이 시작되었다. 음력 1월이 유월절이 있는 달이 되었다. 음력으로 7월이 바로 양력으로 9 1일이었다. 유대인들이 정장차림으로 회당을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929일 저녁부터 10 1일 날이 샐 때 까지가 나팔절이다. 이 날 나팔을 불라고 하셨다. 유월절과 오순절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는데, 나팔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성경에서 이 날을 또 새해로 삼으라는 것이다. 출애굽한 음력 1 14일 그 달을 첫달로 삼으라고 했다. 종교력인 첫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민력(민간인 달력)인 나팔절을 기준으로 달력이 제작되어있다.

7월절기인 나팔절부터 10일후에는 욤키프러인 대속죄일이 된다. 7 15일부터 8일간은 초막절이다. 이 모든 것은 나팔을 부는 절기에 해당한다. 마태복음 24 30-31절에서『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예수님이 유월절날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시고,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셨다. 출애굽한 백성에게서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오순절날 시내산에서 두 돌판을 받았으며, 초막절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켰던 절기였다. 초막절은 하나님 자신의 절기다.

나팔절로 부터 초막절 앞까지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팔절에서 나팔은 하나님의 나팔소리다. 출애굽기 19 16-19절에서『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셨다. 마찬가지로 신약에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이와 같은 것이다. 강림하실 때, 하늘이 온통 불이 되었다. 신명기 5 23-24절에서『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 가운데에서 나오는 그 소리를 너희가 듣고 너희 지파의 수령과 장로들이 내게 나아와』신명기는 광야 40년째의 이야기다. 요한계시록 1 7절에서『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볼지어다(이두 δο)』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심을 이끈다. 네펠론(νεφελν)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에르케타이(ρχεται )는 미래시제가 아니라 현재 중수디포태 시제로서 오시게 한다 라는 표현이다. 중수디포태는 수동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의미는 능동이다. 자신을 위해 타인에 의해 보내짐을 받는 능동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므로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것이다. 에르케타이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적인 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구름들(네펠론:여성복수 νεφελν)과 함께(메타μετ)”라는 말에서 함께라는 말은 “연합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마태복음 1 23절에서『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메타) 계시다 함이라.』임마누엘(6005)에서 60055973과 접미대명사가 삽입된 410에서 유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사야가 말한 메시야의 예표적 이름이다.

구름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단수로 사용되면, 물리적인 구름이다. 이것을 여호와의 영광(임재)과 심판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복수로 사용되는 것은 성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말씀들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천사와 함께 온다는 표현을 했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는 유대인들이다. 찌른 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했다.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 역사는 그림자이다. 실체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해준다. 성도의 옛사람(옛성전)을 다 부숴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세우는 것이다. 생명으로 거듭난 자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과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땅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의미다. 스가랴 12 10절에서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스가랴 12장부터 14절까지는 이스라엘에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애통함을 나타낸다.

레위기 23 23-2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곧 그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나팔절에 관한 규례이다. 이 날은 신년절이라고도 하는데. 안식의 날로 특별히 전국 각지에서 나팔을 불어 기념하였으며, 중앙 성소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제사를 드렸다. 한편 2323절으로부터 23장 마지막 부분까지는 히브리 종교력으로 제 7월에 성회로 모여야 할 각종 절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히브리 월력상 종교력 7월은 민간력 1월에 해당하는데 이 7월에는 나팔절( 1), 속죄일(10), 초막절( 15) 등의 중요한 절기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사역 기간과 관련되어 있는 7이란 숫자가 갖는 독특한 성경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일곱째  곧 그   날은 7(티쉬리월) 1일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유대 종교력에 의한 계산으로 민간력으로는 새해 첫 날 곧 1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팔절은 안식의 달인 일곱번째 달을 맞아 봉헌하 기 위한 절기로,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거행했다.

이 날 나팔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루 종일 반복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날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고 또한 기쁨으로 새 날을 맞을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나팔 소리는 신약 시대의 복음 전파를 상징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시 울려 퍼지는 그 나팔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24:31;고전 15:52;살전 4:16).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노동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4 10절에서『이런 자들을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자기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자기의 일』이라는 말은 바로『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라든가『안식을 대체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아직 안식에 들어간 자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거룩히 지켜야 안식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19절에서 언급되었다.『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또한 에베소서 5 2절에서『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은 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형제를 사랑한다』는 의미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온 영들을 구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는 향기가 되는 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 이전에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레위기 2326-33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속죄일은『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것이다. 나팔절부터 10일간은 고통과 환란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0일간이 끝나면 속죄절이 되고, 속죄절 5일 후에 초막절이 시작된다. 나팔절은 추수가 끝났다는 의미다. 오순절부터 넉달동안 추수가 완전히 끝나서 나팔을 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잘 기억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절기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어린양으로 죽으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그리고 나팔절에 재림하시는 것이다.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숙곳이라고 불린다. 속죄일 이후 5일이 지나서 시작되는데,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진행되며, 초막을 짓고, 그 안에 살면서 광야에서 떠 돌던 그들의 역사와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려 하셨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이 세상에 와서 나그네로서 떠도는 인생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불러 주신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초막은 장막으로도 불린다. 장막은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장막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역사하셨다.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다, 무교절에 예수님이 장사지낸바 되고,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며, 오순절에 성령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셨다. 앞으로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이 남아 있는 것이다. 나팔절이후 부터는 이 땅에 오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오신다는 것이다. 나팔절부터 초막절사이에 주님을 만나는 그 때까지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때까지가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심판자로서 사탄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진 성도는 천년왕국의 왕으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며,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한다는 말씀이다.

 

(6) 등잔대와 진설병에 대한 규례

 

레위기 242-4절『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첫 번째, 1-4절까지로서 성막 안의 등불에 관한 영원한 규례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었다. 성소에는 정금으로 만든 등잔대, 떡상, 분향단이 있고,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으며 그 위에 그룹들과 속죄소가 있다. 먼저 성소의 등잔불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 메시야, 그리스도의 의미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나 왕,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구별된 일꾼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처럼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름을 채운 등잔불을 꺼뜨리지 않고 밝힌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날마다(저녁부터 아침까지)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를 가리킨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성전)가 세워지며,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기름을 채운 등잔불은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레위기 24 5-9절『너는 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떡 열두 개를 굽되 각 덩이를 십분의 이 에바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각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안식일마다 이 떡을 여호와 앞에 항상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두 번째 ‘영원한 규례’는 5-9절로서 거룩한 떡에 관한 것이다.
떡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떡은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라고 했으니, 진설병은 총 열두개가 되는 것이다. 이 열두개의 떡을 매 안식일마다 새롭게 만들어 진설하라고 하셨다. 진설병 열두개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안식일마다 떡을 새롭게 진설할 때마다 백성들이 안식하지 못한 백성이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안식을 위한 떡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 48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라고 하셨다. 이 떡은 오병이어에서 나오는 떡과 같은 말이다. 떡 다섯개 즉 말씀 다섯개는 모세오경을 말한다. 즉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개는 모세오경(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익스투스라 하며,『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이라는 말씀을 포함한다. 물고기는 요나의 표적을 나타낸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심을 나타낸다. 물고기가 두 마리 있다는 말은 초림과 재림을 말한다. 떡 다섯을 먹고 남은 열두 광주리가 남았는데,『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말은 이스라엘(12지파)이 말씀을 들었지만 진리를 모른다는 말이다.

또한 두 줄로 진설된 떡의 각 줄 위에 정결한 유향을 두었다. 유향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을 알고 들고 간 세 가지 예물 중 하나였다. 유향은 불 위에 놓고 피우면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유향을 화제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연기를 말한다. 제물이 태워질 때의 연기를 향기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 향기는 죽음으로 드려지는 향기인 것이다.

 

(7) 안식년에 대한 규례

 

레위기 25 1-7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육년 동안은 밭에 포도를 심거나 파종하여 열매를 거둘 수 있으나 칠년째 되는 해는 안식년이므로 포도농사나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열매를 거둘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안식년에도 자생적으로 난 열매는 먹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가축들과 종들의 먹거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이 안식년을 주신 이유는 이 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뿐만 아니라 사람이 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땅에도 안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땅이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백성이 안식년을 지켜야 땅도 쉼을 얻기에 땅의 안식을 사람에게 명령하시는 것이다. 땅이 생명력을 회복하고, 땅이 식물을 자라게 하는 힘을 회복하는 것은 그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안식년을 지킴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에게도 안식을 주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땅에도 안식을 준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그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 복되고,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자연, 주변 사람들까지 복되게 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안식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존재들에게 인간들은 이 땅에서 안식할지 모르나 참 안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해주신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켜라 라고 하신 것은 애굽으로 부터 나와서 시내산에 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두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이였다.

『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이 한 백성을 선택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 민족을 끄집어 내어서 창세기 1-3절에서 약속하신 안식에 대한 약속을 율법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과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 라고 하시는 것을 신명기에서 볼 수 있다. 『너희는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는 고통이었는데, 하나님이 건져주셨으니 안식을 주신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안식의 시작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의 완성인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첫째 이유는 애굽에서 종되었지만, 지금은 종이 아니다 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안식을 믿지 않는 것이다.

구약에서 안식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참 안식을 위한 연습과정과 같다. 안식을 지키라고 하신 두번째 이유는 대대 후손과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애굽을 나와서 애굽을 벗어났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안식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애굽으로 부터 고통 가운데 해방되었고, 앞으로 영원한 참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안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돌에 쳐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백성들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범하면 죽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안식을 백성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이유는 두가지인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장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희년의 시기에 대한 정확한 날짜를 규정한다. 즉 칠년에 한번씩 오는 안식년이 일곱번이 지난 49년째 7 10일인 속죄일에 큰 나팔을 부는 것으로 희년이 선포되었다. 희년이 속죄일에 선포되었다는 것은 속죄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희년을 오십년이 되는 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시작되는 해와 마지막 해를 동시에 함께 세는 방식에 의해서 오십년이 된 것이다. 이 해는 거룩한 해이며 드로르(דְּרֹ֛ור :자유 또는 해방)가 선포되었다. 드로르(דְּרֹ֛ור)라는 단어는 아카디아어의 안두라루(An-duraru:부채로 부터 해방)에서 온 차용어인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때에 따라서 왕이 이러한 면제령을 내리곤 하였다. 첫째는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을 빼앗겼던 사람들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그 땅을 돌려 받았다. 둘째는 모든 히브리인 노예에게 드로르가 선포되어 희년에 자유의 몸이되었다. 셋째는 땅에 드로르가 선포됨으로 땅을 경작하지 않고 땅에 해방을 주었다.

이러한 자유의 규정은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 즉 경작지를 소유한 정착민들에게 주어졌다. 이들은 희년이 되면 그 사이에 떨어져 있었을 자기들의 소유지와 지파로 돌아 가야 했다. 이들이 소유지와 지파로부터 떠나야 했던 이유가 흔히 부채때문이었으므로, 부채로부터의 해방은 '귀환'의 전제가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원래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질서의 복귀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희년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희년을 히브리어로 요벨(יֹובֵ֥ל)이라고 하는데, 요벨은 수양의 뿔이라는 뜻이다.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부는 날이라는 뜻이다. 수양은 희생 제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뿔은 권세를 나타낸다. 수양의 뿔로 나팔을 분다는 것은 희생 제물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소식이 희년의 나팔소리가 되는 것이다.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속을 받는다는 복음이 바로 희년의 나팔소리인 것이다. 이를 세례요한은 잘 증거해 주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 할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라 고 선포해 주었던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보내신 희생제물이라는 뜻이다. 세례 요한이 온 세상에 희년의 나팔 소리를 분 것이다. 이 예수가 바로 너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실 분이다 라고 알려 준 것이다.

희년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매였던 종들이 풀려나고, 잃어버렸던 토지도 돌려받게 된다. 희년은 종을 해방 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다시 되찾는 날이다. 희년이 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희년의 나팔 소리는 가난하고 매인 종들에게 구원의 소리인 것이다. 토지를 잃어버리고 가난하게 살던 자들과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서 종노릇하던 자들은 희년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렸다. 이 날을 소망하면서 살았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것과도 같다.그래서, 성도는 모든 수고와 슬픔과 고통을 털어버리고 눈물 없고 고통 없고 아픔이나 사망이 없는 하나님 나라로 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희년은 신약의 예수님의 부활 과도 같은 것이다.

희년의 나팔은 7 10일 속죄일에 불었다.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들어갔다. 대제사장은 일 년 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보고를 했다. 보고를 마치면 하나님께서 영광의 구름으로 임재하셔서 환영해 주셨다. 그럼 제사장들은 일제히 양각 나팔을 불면서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일 년 동안의 모든 죄를 탕감 받았음을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 주셨음을 알리는 소리인 것이다.

속죄일에 부는 나팔 소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한다는 소리이다. 희년의 나팔 소리는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지게 된다. 온 나라는 축제가 시작이 된다. 속죄일의 나팔 소리는 안식을 주는 기쁨의 소리인 것이다.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분과 연합된 성도는 함께 부활하여,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지성소로 재림하여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기쁜 소식이 된다.

레위기 2513-17절『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 네 이웃에게 팔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희 각 사람은 그의 형제를 속이지 말라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연수가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땅을 사고 파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곤궁한 처지를 악용하여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해방되는 것을 고려하여 매매 가격을 정하는 문제가 논의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위탁받은 자로 여겼기 때문에 땅을 사고 파는 것이 없었고, 구매자가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땅을 경작하는 권리였다. 그러므로 소출을 거둘 수 있을 햇수에 따라, 희년까지의 햇수가 많이 남았으면 비쌌고, 적게 남았으면 값이 싸게 되었다.

레위기 2518-22절『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땅은 그것의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너희가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소출을 먹을 것이며 아홉째 해에 그 땅에 소출이 들어오기까지 너희는 묵은 것을 먹으리라』

여기서는 희년을 지키는 것이 저들에게 손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큰 이익을 얻는 것임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약속의 내용은 첫째, 그들이 땅에서 안전히 거할 수 있고, 둘째, 그들이 그 땅의 충분한 소출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2518-22절에는 율법을 내리시는 여호와께서 율법을 받아 준수하는 자들과 토론을 하는 것 같은 문구가 나온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안식년에 먹을 것이 없을 거라는 항의에 대해, 육년째 해에는 두곱의 소출을 베푸는 복을 내릴 것을 약속한다. 여섯째 해에 곡식과 열매를 거두고 나면, 그 곡식과 열매로 여섯째 해를 나고, 그 다음해인 안식년까지 먹어야 하며, 안식년 다음해인 여덟째 해에 파종하여 곡식을 거두기까지도 여섯째 해의 곡식으로 버텨야 하는데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그 소출이 삼 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 안식년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년을 지나고 농사를 지어서 소출을 얻기까지 3년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소출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하나님은 안식년이 일곱번 지나고 난 그 다음해 즉 오십년째 해를 희년으로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희년에는 종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가난과 여러가지 이유로 빼앗겼던 땅과 소유지가 회복되는 해이기 때문에 복된 해, 축제의 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규례가 설명되고 있다. 13-17절은 토지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특히 23-28절은 기업으로 물려받은 땅에 대해서, 29-34절은 성안과 성밖에 있는 가옥에 대해서, 35-38절은 가난한 채무자에 대해서, 39-46절은 종으로 팔린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사람에 대해서, 47-55절은 실제 사례를 들어 희년의 규례를 설명하고 있다.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희년에도 농사나 파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곱번째 안식년이 지난 희년을 지낼 때는 4년을 육년째 해의 소출로 먹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50년째 해를 희년, 복된 해, 해방과 자유의 해, 축제의 해로 선포하신다. 안식일, 안식년, 희년이 가능한 이유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공급하심 때문이다.

레위기 2523-28절『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해를 계수하여 남은 값을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8) 십일조에 대한 규례

 

레위기 2730-34절『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무르지 못하리라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니라』

십일조에 관한 규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밭이나 나무에서 나온 모든 소산물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바쳐야만 했다. 아울러 소나 양의 십일조 역시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십일조에 대해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반드시 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이것을 잘 내면 하나님이 더 큰 복으로 갚아준다』라고 한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십일조는 구약에서 정한 율법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십일조를 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깊이 있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신약성경에는 십일조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마태복음에서 23 23절에서 유일하게 있다.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았어야 된다』고 말했으므로 십일조를 내야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이 성경구절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십일조를 언제부터 내게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십일조는 율법에서 정해져서 내야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으므로 현대에 사는 우리도 십분의 일을 내야한다』라고 십일조의 기원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야곱이 자기 형 에서의 손길을 피해서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돌 베게를 베고 자다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깨어나서『하나님이 여기 계신데 알지못했다』라고 하면서 서원 기도를 하는데, 내가 아무 일 없이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나님이 해 주시면, 하나님께 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그렇게 서원을 했다. 그래서 율법 이전에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으므로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 라고 말하는 교회들도 있다.

또 레위지파는 기업을 받지 않았는데,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께 바친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지파에게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이것을 근거로 해서 십일조를 내야한다고 말하기도 한다.『오늘날 목사들이 레위지파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라는 설명이다.『십일조를 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목사들은 목사들이 레위지파,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 생활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십일조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특별히 목사만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성경에서는 멜기세덱에게 바친 것이라든가 야곱의 서원이라든가, 레위지파의 경우에 있어서 십일조에 대한 말은 구약에서 레위지파가 기업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와 관련하여, 오늘날 십일조를 어떻게 바쳐라 라고 하나님이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율법 안에서 내라고 말한 것이며, 하나님이 받으신 것 가운데 레위지파는 특별히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되고 성막에 관한 일들을 해야만 하니까 하나님이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주는 것이다.

레위지파에게 주기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받은 것 중에서 일부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율법에 의한 십일조 외에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십일조를 낸 것은 스스로 서원해서 낸 것인데,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명령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낸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율법에 의한 십일조는『하나님이 이렇게 잘 내면 보상을 해 주겠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뜻을 알지 못하면 안된다.

신약시대는『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가 되었기 때문에 안 내는 것이다. 율법은 장차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했다. 율법에 있는 모든 행사가 장차 오는 그림자 라는 것이다. 제사도 십일조도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장차 오는 좋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인간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는 2000여년 전에 오신 좋은 일인 것이다.

그림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마태복음 23 23절에서 예수님이『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과거시제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아주 작은 소득이 있는 것을 정성스럽게 십일조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참 좋다 라는 것이다. 그렇게 십일조를 드렸는데, 정작 율법에서 정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에 의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잘 한 일인데, 율법 속에 담겨진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지적을 하는 것이다.

율법은 행하면서 율법이 나타내고자 하는 좋은 일을 봐야하는데, 율법이 말해주는 장차 오는 좋은 일은 버렸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버렸으니까 이제 앞으로는 율법도 잘 지키고,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아라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켰으나 의와 인과 신은 버렸는데, 결국 십일조를 낼 때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았어야 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사람들이『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마태복음 23 23절의 구절을 통해서 구약시대에도 했으니까 신약시대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은『앞으로 잘 해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지적하는『과거의 시제』라는 것을 반드시 이해해야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율법 속에 있는 의와 인과 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의는 심판을 의미한다. 율법 안에 있는 심판을 버렸다는 말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 준 것인데, 그것이 바로 심판이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죄가 있어서 심판받아야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두 심판받아야 되는데,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하면서 스스로 의롭다 라고 생각한 것이다.

십일조를 하면서도 심판받아야 하는 것을 다 잊어버렸다 라는 것을 예수님이 지적하는 것이다. 인은 인애, 긍휼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아니한 범죄한 천사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를 멸하시지 않고 떠나서 이 세상에서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보도록 기회와 긍휼을 주신 것이다. 율법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애굽으로 부터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을 떠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긍휼을 베풀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신은 믿음이다.

율법 안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믿음이 있다. 사도바울이 율법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이라는 표현을 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그 율법 속에는 인간들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 와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요, 그러나『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 없는,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과 믿음이 그 율법 안에 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교회사람들은 십일조 안에 어디에 그런 것이 있는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십일조를 내는 것에 있어서,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의와 인과 신이 있다 라고 설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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