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그리스도
4.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그리스도
(1)
출애굽
① 모세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할 만큼 유사한 점이 많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유사했다.
마태복음 2장
16절에서『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예수님의 탄생 시작부터 죽음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출애굽기 1장 15-16절『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일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
모세의 모친은 그를 살리기 위해 갈대로 만든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보냈다. 갈대상자는 영어로 Ark라고 하는데, 이는 성소의 언약궤(Ark)와 같이 표현되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모세를 80세에 택하여, 그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지도자로 세운 것이다.
② 떨기 나무의 불꽃에서 나타나신 여호와
모세가 80세가 되던 어느 날 호렙산에서 양을 치던 중에 떨기나무에서 불꽃을 보았는데,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중에 기이하게 여겨, 가까이 가보니,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모세에게 신을 벗어라고 말을
하고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하라고 하신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만났는데, 출애굽의 명을 받았다고 말하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물을 것인데,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가 라고
되묻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13-15절『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하야 아세르 하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나는 나다”라는 “하야 아세르 하야”를 히브리인들이 아도나이로 부르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시간이 흐르고,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면서 아도나이에서
야훼(여호와)로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이고 이 세상의
그 모든 피조물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존재가 된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으므로 하야 아세르 하야인 것이다. 하야라는 이름(쉔)은 성령과 말씀이 세상에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존재라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하야는 1인칭으로 쓰일 때의 말이다.
나는 나다 라는 것이다. 이게 3인칭으로 사용될 때는 “그(예흐예: אֶֽהְיֶ֑ה)가 존재다”라는 말이다. 그는 이미 존재했고, 현재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서『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히브리어 하야 아세르 하야나 헬라어
알파와 오메가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야훼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예수이다.
하나님의 이름(야훼)『하야 아세르 하야』이렇게 말하고 하야께서 나를 보내셨다 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야 아세르 하야를 줄여서
하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에
나타나신 이름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육체로 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오시므로
하야 아세르 하야인 것이다.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히브리어 성경 원어에는 소유격이 아니다.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이라는 표현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다. 야곱 하나님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에서
바브(세상)라는 철자가 엘로힘 앞에 붙는다. 야곱 하나님 안에는 세상에 오는 하나님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마찬가지로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모세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모든 것이 곧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태복음 17장 5절에서『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③ 뱀과 지팡이
뱀은 장대로 변해 높히 들릴 때 부활생명 그리스도가 되지만, 땅(율법주의)에 있을
때는 흙을 먹는 옛뱀, 곧 사탄(율법주의자)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흙은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7장 8-12절『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탄닌)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지팡이(하나님의 말씀)가 땅으로 던져지니 뱀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주의가
되는 것이다. 다시 집어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된다. 지팡이는
땅에 있으면 안되고 손에 들려야 하는 것이다.
아론이 던진 뱀이 술사들이 던진 뱀을 잡아 먹었다. 아론이 던진 뱀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아론이
던진 뱀은 땅에서 죽고, 하늘로부터 막대기 부활생명으로 태어난다. 술사들이
던진 율법주의 뱀은 하늘의 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아론의 지팡이나, 술사의
지팡이나 땅에 떨어질 때는 뱀으로 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율법주의로 변할 때는 스스로 의를 이루려는
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드려서 그 조문대로 행하여 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으면 율법주의가 되지만,
율법 속에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복음이 된다.
모세가 여호와께 백성들이 자기를 여호와가 보내심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물었다. 출애굽기 4장 2-4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애굽기 4장에서 지팡이가 뱀으로 되고, 문둥병이
고쳐지는 표적이 처음 표적이다. 처음 표적은 뱀이 되고 문둥병자가 되는 것이고, 나중 표적은 뱀이 지팡이가 되고, 문둥병자가 다시 회복되는 모양이다. 처음 표적은 율법(율법주의)에
관한 것이지만, 나중 표적은 복음(그리스도)에 관한 표적이 되는 것이다.
돌로 떡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돌은 율법주의에 해당되고, 떡은 부활생명의 복음이다. 율법주의는 없어져야 하고, 율법 속에서 복음이 나타나야만 한다. 바로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은
율법주의에 함몰된 자들이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출애굽하는 것이 구원이 된다.
출애굽은 모세가 든 지팡이로 이루어진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세를 상징한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율법주의)이 자기들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었다. 히브리어로 된 원문은『이쉬(사람)가
지팡이를 던지니 탄닌으로 하야하고 하야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쉬는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첫사람 아담이 세상에 올 때 그들의 지체를 다 데리고 와서, 세상에
육체를 주었는데, 육체를 가진 뱀이 된 것이다. 이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런데,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바라)고 말한다. 아론의 지팡이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바라는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널
때 홍해가 바로의 군대를 삼킨다 라고 말을 할 때 바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므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다 무너지고, 둘째 사망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조문대로 행하는
자들(바로)은 마음이 강팍한 것이다.
아론이 던지는 뱀은 장대에 높이 들리는 뱀이 된다. 즉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마술사가 던진
뱀은 오늘날 세상에 사는 율법주의자들, 사탄의 종들이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어야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뱀에 먹힌다는 말은 뱀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④장자의 죽음과 어린양의 피와 살
출애굽 당시 열가지 재앙이 애굽의 바로에게 내렸는데, 마지막 열번째 재앙이 장자의 죽음이다.
출애굽기 12장 29-『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후의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에베드)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쿰)
애굽에 큰 호곡(가돌)이 있었으니(하야하고 하야하니) 이는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밤에 밤에 라는 말로 밤이 두번 나온다. 첫사람 아담 때는 밤이지만, 마지막 아담이 오셨을 때도 백성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밤에 있다. 마태복음 4장 16절에서『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율법의 보좌에 거하는 바로의 장자이다. 분리된 집(소하르)의
포로들이다. 옥에 갇힌 자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분리된 세상이다. 첫사람 아담과 함께 온 자가 모두 포로들이다.
생축의 모든 것은 밤과 낮의 우물 우물에 라고 표현되었는데, 생명이 없는 우물을 의미한다. 율법주의에 매여 율법에 따라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말을 못해서 율법 아래 매여있고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장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다 치시매』는 하야하고 하야하셨다는 의미다. 처음 오시고 나중에도 오셨다는 것이다. 밤에 데리고 오시고 밤에 데리고 오셔서 데리고 가셨다는 것이다.
장자의 죽음을 겪은 바로는 드디어 모세와 아론에게 출애굽을 허락했다. 아바다우(עֲבָדָיו֙기본형은 에베드)는 율법주의 아래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일어나는 자들이 바로와 신하와 모든 사람들이다. 와야캄(וַיָּ֨קָם 기본형은 쿰)은 그래서 일어나다 라는 말로, 예수님이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을 때 달리다쿰(아이야
일어나라)이라고 말씀을 했다. 장자가 죽으므로 이들이 쿰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레위 지파를 장자로 세워 장자의 죽음을 대신하게 했다. 장자가 죽으므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애굽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약속이다.
죽음은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다시 예수와 함께 하늘로부터
부활하는 것이다. 큰 호곡은 통곡하는 소리다. 데려오고 데려가므로
통곡이 된다. 처음 세상에 올 때는 소리내어 울지만, 데려감을
당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3절『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다바르)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어린양은 각자가
취하게 된다. 구원은 각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양(쉐 שֶׂ֥ה)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쉐는 가축의 새끼를 의미하고 그래서 양이나 염소의 새끼를 포함할 수 있다. 신약에서 어린양을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하므로 개역개정에서 이렇게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출애굽기 12장 7-10절『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마라르)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유월절 어린양으로부터 피를 취하라(라카흐)는 것이다. 먹을 집 위에 문설주와 인방 위에 주라는 것이다. 이곳 저곳의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을 쓴 나물 위에 먹으라고 되어있다.
문설주와 인방이 있는 문은 집의 대문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10장 7-9절에서『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문을 나오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양이다.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은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릴
것이다 라는 의미다.
성령의 불로 구워진 고기(바사르)를 먹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세례를 의미한다. 바사르는 고기외에 복음을 전하다는 말의 의미도 있다. 살(생명의 떡)을 먹는다 라는 말은 복음과 관련이 있다. 이전의 살은 죽고, 새로운 생명의 살로 태어나는 것이다.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발효되지 않은 빵(떡)이다. 사람의 생각이
섞이지 않은 떡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출애굽과 관련된 표현이다. 신명기 16장 3절에서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무교병은 고난의 떡이라고 말했다. 쓴나물도 고난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무교병과 쓴나물은 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빨리 출애굽하라는 말이다.
반드시 구워먹으라는 것이다. 성막과
비교하면, 처음으로 마주치는 곳이 번제단이다.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우는 것이다. 레위기 3장 17절에서『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불에 구우면 기름도 다 타버린다. 번제단의 불은 심판의 메시지가 있다. 심판은 어린양이 받는 것이다. 어린양을 구워 먹는 것은 대속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머리와 정강이, 내장을 다 불에 굽는다는 것은 온전한 죽음을 의미한다. 성도가 고기를 먹는 것은 고기와 연합하여 생명의 양식이 되라는 것이다. 고기를
불에 태우는 것은 불세례를 상징하지만, 고기를 먹는 것은 부활생명으로 태어남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12장 46절『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빠사르)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한 집은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는 집이다. 한 곳에 모여서 다 같이 고기를 먹으라는
말이 아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창세기 2장 24절에서『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에하드)을 이룰지로다』한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네게드(면전)가 된다. 부모는 아버지(하나님)와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가서 아버지를 떠난
자와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말이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고기(예수 그리스도의 몸)와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하바싸르(הַבָּשָׂ֖ר기본형은 바사르)는 어린양의 살이다. 살은
생명의 떡을 의미한다. 이것을 밖으로 내지 말라는 것이다. 집밖은
분리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밖으로 나가면 생명의 떡인 말씀이 변질된다. 온갖 것들이 혼합되어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변질 된다.
뼈를 꺽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민수기 9장
12절에서『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요한복음 19장 31-34절에서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뼈가 꺽인다는 말은 제물이 훼손된다는 말이다. 제물이 훼손되면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이다. 시편 34편 19-20절에서『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의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유월절 어린양)는 온전한 제물이라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2)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출애굽기 14장
13-16절『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라함)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도 없지만, 사람들은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오직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는 그 믿음 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생각하고 보는 상황에 따라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믿음은 상황에 따라 바뀌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구원은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기서 영원이라는 것은 날이 있는 동안에 라는 말이다. 밤낮 세세토록 이라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여호와라는 말은 여호와
야사라는 표현으로서 여호와 야사의 날에 라메드, 카프, 맴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되는 그 말씀으로 분리되어지고 이루어지는 그 날이 여호와 야사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삼켜질 때까지 잠잠하라(하나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으로
인간이 무슨 말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함에는 먹다, 삼키다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앞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불평하지 말하는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리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다가
갈라지는 것은 마른 땅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마른 땅(아바사)은 창세기 1장 9절에서『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뭍이 마른 땅이다.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온 모든 자들이 마른 땅에서 살게되는 것이다.
홍해가 갈라져서 마른 땅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로 지나가고, 애굽의 병사들도 그곳을 지나가게 된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지나 광야에서 대부분 죽게되지만, 애굽 병사들은 홍해가 갈라진 마른 땅에서 죽게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 앞에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지켜보고 따라야 하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는 자들은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아이들,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말은 세상에서 더 살고 싶다는 표현이 된다. 위험 상황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육이 죽게되면 선택권이 없으므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를 막연히 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말미암아 어린양과 함께 죽은 자들이다. 죽은 자들은 홍해의 물에 들어가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육은 반대로 반응을 하게된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궁창 아래 물에 빠져 죽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베드로전서 3장 18-20절에서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순종치 않던 자들이 홍수에 빠져 죽었다. 노아의 날에 순종치 않던 자들이나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서 있는 자들도 다 마찬가지로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나갔는데, 그들은 사실 물에 빠져
죽은 자들과 같은 것이다. 애굽의 병사들도 다 빠져 죽었다. 옥에
있는 영들은 다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인 것이다.
감옥이 어디인가? 지옥인가
음부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순종하지 않아 세상에 갇힌(옥) 자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죽으심으로 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사,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으로 들어가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회개의 말씀을 들어도 영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영이 빛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3) 두 돌판 사건
①두 돌판의 의미
출애굽기 20장 2절『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시내산에 이르러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이다. 출애굽기 20장 2절에서 언급된 내용은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두 돌판이었다. 그러나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상당한 기간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된다.
출애굽기 32장 1-4절『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그래서 모세가 산으로부터 내려와서 우상을 섬기는 백성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을 깨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4장 1절에서 말씀하셨다.『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처음 두 돌판과 두번째의 두 돌판은 제2계명의 내용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 20장 4-6절『너는 어떤 새긴 형상도 네게 만들지 말고 또한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
20장 8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너를 위하여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물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며” 하늘은 눈으로 보는 하늘(sky)이 아니라, 마음 속의 하늘 나라이다. 하늘 나라를 생각하면서 형상을 떠올리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신명기 5장 8-10절『너는
네게 어떤 새긴 우상이나,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도 만들지 말며,
………』
5장 8절을 다시 번역하면 ”너는 너를 위하여
땅에 있는 것이나 물 안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나 하늘 안에 대한 형상을 만든 것과 같이 만들지 말며”이다.
처음 돌판은 땅이나 물안이나 위에 있는 것과 같이 하늘 안에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두번째는 하늘 안에 뿐만 아니라 땅이나 땅 아래 물 안이나 물 안에 있는
것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 것은 마음 속에 어떤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두번째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같이 어떤 형상이나, 마음 속에서도
형상을 만들지 말하는 것이다. 형상이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의 눈에 보이는 것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만큼 우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마음 속의 형상은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의미한다. 인간들 각자가 하나님을 자기 생각에 맞게 이미지화 하는 것이다. 농경사회나
가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풍요를 주는 분으로 생각한다. 나아가 상징적으로 소를 하나님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발전해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다. 두번째 돌판은 실제 보이는 동식물을 대상으로 인간들이 이미지를 확대한 것을 우려한 것이다.
첫째 두 돌판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율법의 대표격인 십계명으로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돌판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한 백성에게 주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이 돌판은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깨어지게 된다. 이는 백성들이
육의 마음으로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두번째 돌판은 가나안 입구 모압 땅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에게 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율법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성령의
법인 것이다. 첫째 두 돌판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명령하듯이 반드시 글에 쓰인대로 행하도록 했지만, 두번째 두 돌판은 성인에게 말씀하듯이 마음에 새겨,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영의 마음으로 행동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성령의 능력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나안 입구에서,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는데, 열정탐꾼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다 죽는다 라고 보고하고, 그 말을 들은 모든 백성이 통곡하며 울었다.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간 돌게해서 다 죽게했다. 두명의
정탐꾼이었던 여호수아와 갈렙과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들과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이었던 아이들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이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지난 1세대 백성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마음에 새기라는 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키고 보호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며, 그 말씀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첫번째 돌판과 두번째 돌판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과
같은 모양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준 그리스도, 두번째
사람 아담은 영의 몸을 주었던 그리스도였다. 따라서 두번째 돌판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세워진 성전과도
같은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깨어지고(죽고) 두번째 돌판이 새로 새겨져(다시 태어나)언약궤 안에(성도의 심중의 성전 안에) 들어있다.
시편 40장 8절에서『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두번째 돌판이
심중에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돌판은 새로운 법으로서 그리스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고린도전서 9장 21절에서『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첫번째 돌판이 주어졌는데, 인간은
도무지 지킬 수 없음이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넘치게 된다. 그게 두번째 돌판인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 돌판과 함께 여호와의 이름이 선포되는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첫사람 아담, 죄에 대한 것이라면, 두번째 돌판은
마지막 사람 아담,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것이다. 첫번째
돌판은 십자가의 죽음이라면, 두번째 돌판은 부활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서『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② 모세 얼굴의 광채
출애굽기 34장29-30절「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이것은 성물과 접촉하는 것이 거룩해진다는 원리와 일맥 상통한다. 즉 모세는 다른 모든 것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만 집중했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 혹은 거룩함이 자연스레 모세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얼굴 피부에 광채 남을 보고” 다시 직역하면, '보라 빛나는 얼굴의 피부가 되었도다'란 뜻으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의
광채를 보고 놀라워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두려워하더니” 앞절의 '광채가 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란'은
'뿔이나다'는 뜻도 있다. 아마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는 뿔과 같은 모양으로 빛났던 것같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사도 바울은
이 모세 얼굴의 광채를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새언약의 영광스러운 광채로 승화시켰다(고후3:7-18).
출애굽기 34장 31-33절「모세가 그들을 부르니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회중의 어른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가리킨다.“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더라” 이것은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서부터 나는
광채에 백성들이 현혹되어 자신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가능성을 배제키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후에 바울이
율법에만 집착하여 그 율법이 가리키는바, 그리스도의 빛나는 영광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어두운
심령 상태를 나타내는 비유로 인용하였다(고후 3:7-18).
출애굽기 34장34-35「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하나님과의
언약체결 이후 시내 산을 내려오는 모세의 모습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다. 사십 주야를 하나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던 모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음을 알 수 있는 징표였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얼굴이 변화되었다. 이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것이다. 얼굴이 변화되는 것은 다른 존재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전의 육은
죽고 새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로마서 6장 4-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4) 불뱀과 놋뱀
민수기 21장 5-9절『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라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출애굽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죽게 했는데, 모세가 살려달라는 간구의 기도를 통해서 놋뱀을 만들어 들게해서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므로 온 인류를 영으로 살게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3장 14-15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를 믿지만 예수를 믿는 자가 다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니고데모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불뱀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고, 놋뱀은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부활의 주님과 연합되는 자는 영적으로 살게된다는 말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를 믿지만 뱀에게 물려서 뱀의
독이 퍼져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회개한 적이 없다. 회개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마술장이 시몬이 그러했다. 빌립 집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가 시몬에게 와서『네 속에는 악독이 가득한 자』라고
말했다. 시몬이 니고데모가 그러했듯이 베드로의 말을 받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독사의 독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말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알 수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하늘의 빛이 비춰져야만 알게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삼년간 예수님을 따르고, 배우고,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베드로가『이들은
다 버려도 나는 안 버린다』고 말하니 예수님이『너는 닭 울기 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변한다는 것』은 이전 것과 이후의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도망가기 전 믿음인지 도망간 후의 믿음인지?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는 것과 예수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예수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변한 것이 없다.
『변한다는 것』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장대에 높이 들린 인자를 바로볼 때, 그렇게 해 주신다. 내가 할 일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장대에
높이 들린 인자가 바로 나를 대신해서 주님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장대에서 죽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많은 교회에서『여러분 변해야만 구원받습니다』라고 말할 때 듣는 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내가 주체가 되면 예수를 부인할 믿음이 되지만, 내가 객체가 되어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이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면, 더 열심히 기도생활하고, 신앙생활 더 잘하고, 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이런 신앙생활은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일 뿐이다.
『변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점진적으로 노력해서 서서히 변화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여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될 때, 그 변화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성전 휘장이 갈라지듯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고 부활한 것은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가 들리신 것이다.
그리고 뱀의 독이 퍼져있는 것을 깨달은
자가 회개하여, 장대에 높이 달린 부활하신 인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 고통은 마치 뱀처럼 뒤틀려서 죽으신 모습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놋뱀처럼 영광으로 빛나는 모습이다.
예수를 믿는 자, 그 예수와 하나가 되는 자가 구원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자가
뱀에게 물린 자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지못하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5) 마라와 므리바의 물
①
마라의 쓴물과
단물
출애굽기 15장 22-27절「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미리암은 마라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반역하다 쓰다 라는 의미다. 나사라는 말은 뽑아서 라는 말이다.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라는 의미다. 수르는 벽(경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 16장 7절에서『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수르)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하갈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는 장면이다. 하갈의 아들(이스마엘)은 율법의 자녀인 것이다. 수르의 유래된 말의 의미가 돌아다니다 라는 뜻도 있다. 돌아다니고
돌아다녀서 벽을 만나는 광야인 것이다.
벽은 울타리(율법)를 의미한다.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은 율법 안에 갇혀있다는 말이다. 거기는 생명의
물이 없다는 것이다. 마른 땅(광야:미드바르)인 것이다. 물은
있는데(율법) 생명이 되는 마실 물이 없는 것이다.
사흘길은 세 때를 의미한다. 광야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라의
쓴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마라는 마르(쓰다 괴롭다)에서 유래되었다. 아직까지 돌판을 주시지 않았지만 율법은 쓰다 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들은 율법이 써서 마실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마실 물을 주실 것이다.
오늘날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율법의 조문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을 받거나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다라고 말을 하는 어리섞은 율법주의자들도 있다. 율법을 통하여 인생의 괴로움을 깨닫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구하는 자가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이다.
백성들이
모세 위에 지내면서(룬) 말을 하는 것이다. 룬이라는 글자는 창세기 19장 2절에서
롯이 천사들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이찍이
일어나 갈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라고 말을 하는데, 경야가 룬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모세 위에 룬 한다는 것은 율법 위에 지낸다 라는 것이다. 율법 위에서 마실 물을 얻지 못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모세가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모세 위에서 백성들이 룬 하나가 물이 쓰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이다.
쓴물에 나무를 던지니 단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에 생명 나무가 들어가서 쓰게 된 것이 달게 되는 것이다. 생명나무가
들어가서 그것이 공의(미쉬파트)가 되어 그 때 그때에 사람들을
시험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의 조문을 마셨는가 아니면 생명의 물을 마셨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율법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시험인 것이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것이 율법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쓴물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8장
11절에서『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나무가 단물로 만드는 것이다. 쓴물은 십자가를 상징하고 단물은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규례와 계명은 마라의 쓴물을 마시고, 쓰므로 부르짖는 자에게
생명나무를 던지도록 하여 단물을 마시게 하는 그것이 규례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가 분명히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율법의
조문을 지키는 규례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에 여호와의 소리를 듣고 모든 규례를 마음에 지키면 하나님이 열가지 재앙과 같은 그런 심판이 있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질병이라는 말은 율법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는 율법에 따른 심판이 있지 않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온 것 자체가 질병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병이 낫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가는 것이 치료(라파)인 것이다. 이사야 53장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되어 있다.
② 므리바(맛사)의 물
출애굽기 17장
1-4절「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물이 없는 곳)으로 왔는데, 이게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물이 없는 곳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주하여 나그네로서 삶을 사는 존재라는 말이다. 르비딤은
어근이 라파이고 치료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광야에서 떠나(맛사) 라는 말은 말씀으로 떠난다는 의미다. 장막은 헨(은혜)과 아다드(은혜의 문과 문)의 합성이다. 은혜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이다. 쉬기 위해 장막을 쳤는데,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만나를 먹어도 갈증이 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49절에서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라고 말한다. 즉 만나를
먹었어도 그 만나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죽었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7절에서도
말하고 있다.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 가 아니냐"
시편 81편
7절에서,『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했다고 말을 한다. 치료를 위한 시험이다.
여기에는 백성이 모세와 논쟁을 했다는 것이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게 아니라 알아야 할 일을 위해 서로 논쟁하는 것이다. 모세는
나와 논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논쟁해야 하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백성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켜 의를 이루려고 하는데, 목마른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즉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들어주는지 아닌지를 시험하라는 것이다.
율법의 조문을 지켜 의를 이루려고 하므로 목말라 있는 것이다. 목이 마르면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어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율법의 조문을 지키므로 목마른 상태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논쟁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르비딤에 와서 그들이 목마른 상태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율법을
지켜 의를 행하려 해 보았으나 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생명의 물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탄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지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모세가 말하기를
이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작은 돌을 던져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7장 5-6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의 장로를 데리고 가는 것은 장로들이
변화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율법의 조문을 고수하고 목마른 상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이스라엘 장로들이다. 그들을
데리고 가서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수는 예오르 강을 의미하며 요단강을 의미한다.
반석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사무엘하 22장 2절에서『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반석을 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0장 1-5절에서『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십자가)을 통해서 물(부활생명)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생명의 물인 그리스도를 주겠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7장 17절에서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은 율법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호렙산 반석을 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음(피)으로 부활생명의 물이 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갈증을 깨닫는 자만이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다. 바위가
갈라지므로 물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출애굽기 17장 7절「그가 그곳(마콤)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그 곳은 히브리어로 마콤(מָּקֹ֔ום)이다. 마콤의 이름을 맛사 므리바라 불렀다. 마콤은 쿰에 맴이 붙어서 말씀으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달리다쿰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라는 말인데, 죽음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것이다.
마콤은 생명의 말씀으로 인하여 살아나라는 것이다. 맛사는 다투다, 므리바는 시험하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율법 위에 다투었고, 여호와를 위에 위에 시험하였다. 처음과 나중에도 시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를 시험한다는 것이다.
마콤은
여호와께서 우리 안에 계신지 시험하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으로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가지고 시험하라는 것이다. 율법의 조문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생명의 물이 없는 것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물을 구하는 자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는 것이다.
(6) 맛나와 메추라기
출애굽기 16장 2-5절「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시르)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니리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둔
것의 갑절이 되리라」
개역개정에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스라엘 자손 회중 모두가 모세 위에 아론의 위에 위에 광야에서 머무르고 또 머무르고 머무르는데” 라고 되어 있다. 머무르는데(룬)에서 룬은
밤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율법) 위에서 아론(복음) 위에서
복음을 얻으려고 머무는데, 라는 의미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살다가 진정한 영적 생명을 이루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 누군가가 불평의 말을 하는 것이다. 민수기 11장 4절에서 맛나를 먹으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소개되는데,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바로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자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율법의
조문을 지키는 자들은 율법을 통해서 육적인 것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나, 영적으로는 여전히 배고픈 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애굽 땅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양식을 내려주신다.
애굽 땅에서
죽는 것은 율법으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반드시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육적 양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니리.』히브리어는 마티르 라켐 레헴(מַמְטִ֥יר לָכֶ֛ם לֶ֖חֶם) 번역하면, 『내가 비를 내리게 하겠다(마티르), 너를 위하여(라켐) 떡(맘티르:기본형은 마타르)을』 개역개정은 떡과 비를 결합하여 하나의 의미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비같이, 또는 떡비 라고 번역했다. 마타르(4305)는
비오다, 비를 내리게 하다 라는 의미다. 비오는 것과 떡을
주는 것을 결합할 것이 아니라, 비와 떡을 분리해야만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비와 떡이 동시에 내리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비는 물을 의미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물고기를 의미하며, 떡은 보리떡 다섯을 의미한다. 위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표적과 닮아있다.
물고기
두마리에서 물고기는 물을 상징하고, 둘은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두 계명으로서, 신약의 두 계명은 죄 사하심을 얻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병은 보리떡 다섯개로서, 다섯은
모세오경의 율법을 상징하며, 율법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의
완성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며, 부활이 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상징은 예수와 핚께 십자가에서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떡은 여섯째 날에는 두배를 모으게 하셨다. 두배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시험이 되는 것이다. 다음 날에는 안식일이므로
나가지 않도록 두배를 주시는 것이다. 두배를 주겠다는 말 속에는 일곱째 날에는 안식을 준다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다.
두배라는 말 속에는 첫사람의 아담(십자가의 죽음)과 안식이 되는 마지막 아담(부활)의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상징하고, 마지막 아담(두번째)은 부활의 몸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16장 8-「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바사르)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바사르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고기를 먹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되는 것이다. 저녁은
어둠, 곧 죽음을 상징한다. 아침에 먹는 떡은 부활을 상징한다. 아침은 어둠이 지나고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에게 다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원망은 모세에게 아론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듣고 있는 것이다. 원망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스스로 자기의 일을 해 보는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3-15절 「저녁에는 메추라기(세라브)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메추라기는 저녁을 상징한다. 죄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쉐라브는 필사의 변화라는 의미를 갖는다. 죄에 대해서 죽으면 생명이
오는 변화를 의미한다. 로마서 6장 5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쉐라브는 아버지와 아들안에서 말씀이 이루어지면 그들에게 성령이 오게 되는 것이다.
아침에는 마하네 주위에 이슬이 있고, 누워있는 이슬이 올라가면 둥글며 작고 서리같은 것이 광야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은혜의 말씀이 보이고 보이는 것이다. 이슬은 은혜의 율법 안에 있는
것이다. 이슬이 올라간다는 말은 부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하나되는 말씀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식량은 광야 있는 둥글며 작고 서리같은 것이다. 이후에 맛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남자의 입에 식량을 모으라고
하신다. 남자의 머리 수에 따라서 음식을 모으라는 것이다. 오멜은
한 단위이다. 민수기 1장 20절에서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
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7) 아말렉과의 전쟁
출애굽기 17장 8-9절「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르비딤에서 생수가 반석으로 부터 나와서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는데, 갑자기 아말렉이 등장한다. 생수가 나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로 부터 부활하심으로 생명이 되신 것이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며, 율법을 이루려고 하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사도행전 15장 1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율법주의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려는 율법주의자들인
것이다. 아말렉은 어떤 부족이지만, 오늘날에는 육의 몸으로부터
나타나는 옛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출애굽기 17장 10-12절「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라함)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타마크)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아말렉이 들어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와 야솨의 합성어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말이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손이 내려가면은 손이 "쉬면"이다. 쉰다는
말이다. 여호와의 지팡이(권능)가 쉰다는 것이다.
영적인 전쟁은 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늘의
것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는 여호수아가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것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면
성도는 땅의 것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옛사람의 모습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옛사람은 아니지만, 옛속성이 새사람이 된 성도를
괴롭히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게 영적 전쟁이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복을 비는
기도는 옛사람의 등장을 촉구하는 기도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모세는 산(하늘)에서, 여호수아는 땅에서 전쟁을 한다. 모세의 손은 하나님의 손을 상징한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이사야 63장 12절에서『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에무나 אֱמוּנָ֖ה) 올렸더니(타마크תָּֽמְכ֣)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이사야 42장 1절에서『내가 붙드는(타마크)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시편 42편 11절에서『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타마크)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에무나”는 믿음으로 라는 의미다. 그의 손이 믿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의 손으로
되었지만, 모세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의 손은 육체적 한계로
내려올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보조 인물로 아론과 훌이라는 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이 피곤할 떼 붙드는 것은 인간의 손이 내려오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이게 에무나(믿음)이라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그 믿음인 것이다.
출애굽기 17장 13-16절「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가 단(미즈베아흐)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칼날은 입의 칼이다. 말씀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다. 책에 기록한 것이 모세오경(율법)이다. 율법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아말렉을 쳐서 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내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귀에 들리는 것은 하나가 되는 자만 들리게
된다. 성령에 의해 마음에 기록된 것이다. 율법이 완성된
자만 아말렉을 이긴 자이고, 다시는 율법으로 그들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이 필요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적 전쟁을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나" 라는 정체성을 잘 깨달아야만 한다. 영적 전쟁은 율법주의와 복음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율법과의 전쟁은 대대로 이어지며, 하나님이 직접 성도의 심령 속에서
싸우시는 것이다. 결국 생명나무(복음)와 선악지식나무(율법주의)와의
싸움이다. 선악지식 나무는 율법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스스로 선을 이루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의
생각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천사들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생명나무는 복음으로서 오직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다. 복음과 율법주의가 항상 마음 속에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의 조문도 지켜야 한다는 자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다. 율법주의자들은 규칙을 강조한다. 무엇인가 규칙을 정해서 행하도록 하고
그것이 의의 길로 가는 길인 것처럼 말한다.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고, 십일조를 반드시 해야하고, 주일성수를 반드시 해야하고 하는 등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규칙을 지킨다고 마음까지 변화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율법
이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자만이
마음의 변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성도의 옛사람은 율법의 조문을 원한다. 그러나 성도의 새사람은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나아간다. 하나님이 이 전쟁에서 지켜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전쟁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말렉(옛사람)을 진멸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8) 하늘의 식양대로 성소를 짓도록 함
출애굽기 25장 8-9절「내가
그들 중에 거할(샤칸)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타브니트)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타브니트)을 따라 지을지니라」
샤칸은 거하다라는 말로서, 하나님이
세상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육신 속으로 들어온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게 성소라는 것이다. 성도
역시 하나님이 그들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이게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아)인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타브니트(תַּבְנִ֣ית)는 모양이라고 번역했는데,
모형을 의미한다. 그 모형(사본)을 통해서 참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25장 9절의 마지막 부분에 싸멕(ס)이 있다. 이는
우리말로 사다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인자가 사다리라는 것이다. 천사들이
사다리에서 오르락 내라릭 하는 모습이다. 이는 첫사람 아담이 그들의 지체와 다불어 세상에 오고, 마지막 사람 아담이 그의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 사다리가 성소이며,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성소는 다름 아닌 하나님과 만나는 구원의 장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성소를
지을 것을 명하시는 말씀이다. 성소는 언약을 증거 하기 위한 막이기에 증거막이라고도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곳이기에 회막이라고도 한다.그리고
이곳은 세상과 구별된 곳이기에 거룩하다고 해서 성막이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증거막, 회막, 성막을 함께 사용했다.
성소는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이고, 오직 하나님 백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에 항상 기쁜 마음이 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동안에는 하나님을 떠난 자이며, 하나님이 두려운 자들이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러 올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을 깰 때는 두려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전에 대한 말씀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히브리서에서 무려 50여
장에서 언급되고 있다. 특히 출애굽기 25장 부터 40장까지 열여섯 개의
장이 성막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위기는 열여덟개의 장이 성막에 관한 이야기이다. 민수기에는 한 개의 장(13장)이
성막에 관한 것이다. 신명기에는 두개의 장, 히브리서에는
네개의 장이 성막에 관한 것이다. 성막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전에 관한
말씀이 곧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 요한복음 5장 46절『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모세는 모세오경의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어야 하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다. 율법의 핵심은 바로 성전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스케노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에스케노센(ἐσκήνωσεν)은 장막을 치다 라는 의미다. 심령 속의 성전 안에 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인 것이다.
성막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미쉬킨(מִשְׁכָּן), 오헬(אֹהֶל)이다. 미쉬칸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장치인 성막인 것이다. 오헬은
하나님이 거주한다는 의미로서 성막이다. 나아가 솔로몬이 세운 성전(베이트 בית)가 있다. 은혜로 완성하는 성전 이라는 의미다. 성전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 천지창조와 에덴(창세기 1-3장), 구약시대 건물 성전(성소), 신약의 성도의 심령 속의 천국이다. (고전 3:16)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으며,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첫째날에서
일곱째 날까지 표현을 하면, 빛, 궁창, 뭍(씨), 마오르, 새(바다), 짐승(사람), 안식으로 나누어진다. 이를
성소의 용어와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연결하여 적용할 수 있다.
첫째 날, 빛은 번제단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5절(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장 9절(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29절에서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번제단에서 어린양이 죽는다. 어린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게 된다. 절기로는 유월절과 관계된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인해서 출애굽이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1장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된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시를
통해서 속히 될 것(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옛성전이 무너지고, 성도에게는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출애굽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계시는 세가지의 측면에서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 첫째,
창세기(1-3장)의 측면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갇혀있는 자라는 것이다. 천지창조 7일을 보면 흑암에 갇혀 있는 자에게 빛이 들어오고, 말씀(바다)이 들어오고, 생명의
꽃을 피우고, 흑암에 있던 자가 빛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 안식을 하게 되는 모습이다.
둘째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통한 출애굽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역사와 옛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세번째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성전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연결되고 조화될 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들이 깨달아지는 것이다.
둘째 날, 궁창은 물두멍이다. 물두멍은 바다(아래 물)를
의미한다. 최초의 땅(에레츠)은 흙탕물이었다. 그런데, 뭍(번제단)이 드러나고 바다(물두멍)가 되었다. 물두멍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2장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는 가나의 혼인잔치 사건이 등장한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위로 나는 것을 표현한다. 요한복음 3장 26절에서『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세례는 물세례와 불세례가 있다. 물세례는 홍해를 건너는 것이다.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음을 의미한다. 물두멍에서 씻는 것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불세례는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불세례를
받은 자는 역시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게 된다.
절기로는 무교절과 관계된다. 무교절은 죄의 확산을 경계한다. 비진리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2-3장이 해당된다.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들이다. 언약에 대한 소송이다. 교회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말씀들인
것이다.
셋째 날, 뭍은 떡상이다. 출애굽 당시 맛나와 연결된다.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제자들은
먹을 떡을 사러 갔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서 참 양식을 말씀하고 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5장은 영생에 관한 이야기, 6장은 떡에 관한 이야기(오병이어)다. 출애굽기에서 맛나를 통해서 하늘의 양식을 먹는 것이다. 절기로는
초실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4-5장의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늘의 보좌와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넷째 날, 마오르는 등잔대와 같다. 요한계시록은
일곱별(일곱교회의 사자)을 말한다. 일곱별은 복음을 전하는 자(성도)를
의미한다. 성도는 별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이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8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9장은 맹인을 고쳐주신다.
절기로는 오순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6-7장의 내용과 관련된다. 일곱
봉인과 인을 치는 내용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므로, 성도는
성령세례를 받고, 세상으로 나가 천국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섯째 날, 새(바다)는 분향단이다. 분향단은
기도(전쟁과 고통)와 은혜를 나타낸다. 성도의 심령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성도의 앞에는 일곱 족속이 등장한다.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심령 속의 지성소로
들어가(들맆새서) 영적으로 하나님의 임재(파루시안)속으로 들어가 힘을 얻으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0-17장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이 계속 말씀을 전하므로 유대인과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8-14장까지 여기에 해당되는 내용이
연결된다. 절기로는 나팔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8-14장의
내용과 관련된다. 나팔절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설교하므로
일어나는 것이 영적전쟁(12-14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순교자가 생기는 것이다. 순교자의 피가 대접 심판을 불러
일으킨다.
여섯째 날, 짐승(사람)은 휘장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8-19장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래서 죽음으로 휘장이 찢어지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마지막으로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절기로는 속죄일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15-19장의 내용과 관련된다.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A.D.30년 경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예루살렘 성전은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가운데 40년간의 기간은 회개의 기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판의
이야기가 나온다.
큰 음녀,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지면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제사장으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파루시안)하신다.
일곱째 날, 안식은 법궤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9장 38절부터 마지막 장(21장)까지를 나타낸다. 무덤은
지성소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20장 11-12절에서『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두 천사는 언약궤에 있는 그룹(천사들)을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들어가서 살아나면 그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신 것이다. 요한복음 20장은 에덴의 회복인 것이다. 20장 15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동산은 에덴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인 것이다.
그래서 일곱 귀신들린 자(막달라 마리아)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접하게 된다. 절기로는 장막절과 관계된다.
요한계시록은 20-22장과
관련된다. 천국 혼인잔치가 일어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에서
그리스도가 파루시안(임재)하시고, 성도 역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심령 속의 지성소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십사만 사천이 되고, 천년왕국이 되며, 셋째 하늘(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것이다. 성도가
살아있을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다.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성전(새성전)이
바로 성도의 심령 속의 천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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