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예수 그리스도

 

10. 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누가복음 2 1-7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에 호적 등록하러 왔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날 마리아는 오직 예수님의 출생 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첫번째의 성탄은 아무도 영접하지 않은 예수였다. 또한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출생할 때,『어느 집으로 가라』라는 등의 상황을 계시하시지 않으셨다.

미가서 5장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기름부음은 구약에서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에게 주어지는 의식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이 세 가지 직분이 모두 적용이 된다. 그럼으로 그는 대제사장, 선지자, 왕이시다. 그리고 그의 신분은 그 본질이 하나님이시다. 감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그가 마구간에서 비밀스럽게 아주 초라하게 태어나셨다. 구유(파테오마이)에 뉘었다. 파테오마이는 먹다 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요람은 짐승들의 먹이통인 구유였다. 이것은 인류를 대표하는 마지막 사람 아담으로 그가 행할 역할 때문이었다. 그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사탄에 묶여있던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놓기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철저하게 낮아 지심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죄를 회개하여 예수와 연합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가 전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공의로움이 있다. 아기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사람 아담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케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부류의 축하객을 준비하셨다. 한 부류는 동방의 박사들이며 한 부류는 목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탄생의 비밀을 증거하게 하셨다. 밤에 야영하던 목자들이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은 것으로 보아 요셉과 마리아가 머물던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예수님이 목자가 되심을 나타낸다. 베들레헴 부근의 들 어느 곳에 목자들이 묵묵히 그들의 양들을 지키기 위해 밤이슬을 맞으며 양들을 지키고 있었다.

주의 사자가 그들 옆에 섰다. 갑작스럽게 그들에 나타났다. 목자들은 주의 영광으로 인해 두려워했다. 주의 사자는 유대 왕에게도 대제사장에게도 서기관에도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베들레헴 거주민에게도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주의 사자는 목자들을 방문했다. 주의 사자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린 것은 예수님이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목자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쁜 소식이란 그리스도 주이신 구주가 나셨기 때문이다. 천사가 가지고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다. 온 백성을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전 인류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이다. 미가서 5 2절에서『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구주라는 말은 해방자, 구원자라는 뜻이다. 죄와 사탄으로부터 종된 자들을 자유하게 해주시는 구주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 영광의 결과이며 계시이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귀와 영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어서 가장 높은 하늘에 계신 그 분에게 그 사건에 대한 모든 찬양이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세상 모든 사람의 평화가 아니라 회개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광경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놀랐다고 하였다. 조상 대대로 기다려온 그리스도라니 말이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들을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을 찾아왔던 천사의 말과 성령이 충만하여 찬양했던 엘리세벳의 말을 기억했을 것이다. 목자들이 그들이 들었던 것과 보았던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은 탄생직후부터 고난 중에 계셨다. 마태복음 2 13절에서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베들레헴의 첫성탄은 축제가 아니라 비극이었다. 헤롯이 세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다 죽였다. 세계의 역사상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첫성탄은 통곡 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리아에게도 불안하고 고통의 날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날이었다. 예수님은 이집트에 피신하여 있게 된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예루살렘에 돌아온 요셉은 아기 예수를 모세의 법대로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팔일 째 되는 날에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으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과된 의무였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복종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받는 날까지이다. 그 이후 예수님은 율법 위에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율법을 완성한 것이다.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의 마침이 된다.

예수님은 할례를 받고 나서 정식으로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결례란 남자를 낳은 산모는 33일 동안 부정하고, 여자를 낳은 산모는 66일 동안 부정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에덴에서의 죄과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레위기 12 1-5에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7일간과 33일 간 합하여 40일을 지난 뒤에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율법에 의해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렸다. 본래 산후결례시의 번제는 어린 양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으나 가난한 자에게는 비둘기 새끼로도 드리도록 관용 조항을 두었기 때문이다. (레위기12:6-8)

이처럼 예수님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셨다. 결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온 요셉과 마리아는 뜻하지 않게 두 명의 경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시므온이라는 예루살렘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안나라고 하는 여선지자였다.

시므온은 경건하고 의로운 자였다. 그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은 자였는데 예루살렘에 나타난 아기 예수님을 보고는 성령으로 인해 그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이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시므온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자로 뿐만 아니라 세상만민과 모든 이방민족에게 까지 진리의 빛을 비추어 구원할 자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순탄하게 평안한 가운데 되어질 일은 아니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또 한사람은 안나 여선지자로 그녀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인데 일곱 해 동안 남편과 살다가 남편이 죽고 난 후 오랫동안 과부로 지내면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도 예수님을 보자 사람들에게 증거하였다.

베들레헴에 호적하기 위해서 갔던 요셉과 마리아는 본래 그들의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갈릴리는 앗수르에 의해 가장 먼저 점령당해 이방인들이 많이 이주해 있었던 곳으로, 이사야 9 1절에서 유대인들은 갈릴리를『이방의 갈릴리』라고 부르며 천대했다. 갈릴리 자체는 풍부한 농작물의 소산지였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소작농이나 품꾼으로서 예수님 당시 때에는 과거의 반란으로 인해 1년에 200달란트나 되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가장 빈곤한 동네였다. 나사렛으로 돌아가신 후 그가 어떻게 성장하셨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어린시절은『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하고 있다.

 

(2)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고린도전서 15 1-2절『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전했을 당시에는 부활에 대해서 잘 알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활을 잘못 이해하는 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은 사실로 기독교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여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열두제자들과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많은 형제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형체를 보여주신 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도 나타나신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인을 핍박하였던 자였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형제들에게만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12절『그리스도께서 죽은(네크론νεκρν) 자 가운데서(에크) 다시 살아나셨다(에게게르타이)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아나스타시스)이 없다 하느냐』에게게르타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영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나스타시스는 영이 영의 몸을 입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게게르타이(γγερται)는 살아나다가 아니라 일어나다 (arize)라는 의미다. 아나스타시스(νστασις)는 위(하늘)에서 세워지다 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죽음으로 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는 함께 부활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18절에서「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아나스타시스는 위로부터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를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게 거듭남이다. 거듭남이 부활인 것이다. 바울은 왜 이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신도들이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육체의 부활로만 생각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13-14절『만일 죽은 자의 부활(아나스타시스)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에게게르타이)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여기에서도 아나스타시스(νστασις)와 에게게르타이(γγερται)로 말하고 있다. 에게게르타이는 살아나다가 아니라 영적으로 일어나다 (arize)라는 의미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의미이고, 아나스타시스는 위(하늘)에서 세워지다 라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활이 영적인 이야기인가 라고 오해할 수 있다. 부활은 외형적으로 몸이 살아나는데, 그 몸이 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몸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영적관계 회복을 위한 부활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영의 몸으로 살리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로마서 8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먼저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믿음도 헛것이요,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도 헛된 것이다. 부활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는 삶은 세상적인 삶이라고 표현된다. 궁극적으로 부활(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삶은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말하며, 성도 또한 육적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서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 그 분과 대화하고 동행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부활은 현재적 부활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영적으로 살아나서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21-22절『사망이 한 사람(첫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마지막 아담)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조오포이에데손타이)

아담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자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자를 의미한다.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은 아담으로 부터 죽음()을 물려 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부터 생명(영의 몸)을 물려받은 것이다. 조오포이에데손타이는 살리심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다. 조오포(생명)이에데손타이(만들다)에서 조오포의 어근인 조에는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그 첫 열매이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그 다음의 열매맺는 자들이다. 열매는 부활생명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삼일만에 부활한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은 죄와 허물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며, 부활은 새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에베소서 2 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부활생명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프우라노이스)에 앉히심을 받는다. 하늘은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우라논)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마태복음 3 2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이며, 하늘이라는 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부활생명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부활생명을 받는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생명을 부어주시는데,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세상의 지배자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는 부활생명이 없으며, 하늘에 앉히심을 받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만 하늘에 앉히심을 받는다.

 

(3) 승천과 재림

 

누가복음 2450-53절『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톤 우라논 τν ορανν)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서 마가복음 1619절에서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톤 우라논 τν ορανν)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늘로 올려지셨으며,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25-6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에풀라니오이스 πουρανοις)』성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1548절에서『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풀라니오이스 πουρανοις)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톤 우라논과 에풀라니오이스(ἐπουρανοις:하늘의 처소들)는 관사가 있는 복수 형태로 되어있으므로,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성부 하나님 나라를 표현할 때는 테스 바실레이아 투 데우(τς βασιλεας το θεοῦ: 하나님 왕국)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나라에 승천했다는 말이다. 하나님 왕국과 하늘 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늘 나라(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에서 하늘(톤 우라논)을 잘 이해해야만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이론은 성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의한 성도로 인식되어야 한다. 삼위일체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임을 잘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 왕국과 하늘나라(천국) 역시 사람이 이해될 수 있는 수준에서 성경은 말을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왕국이나 하늘나라(천국)는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성경은 설명한다.  

첫째하늘은 보좌에 계신 성부의 하나님 왕국을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디모데전서 6 16절에서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둘째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영의 몸을 입고 임재하시는 아들의 나라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누가복음 24 39절에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골로새서 1 12-13절에서『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둘째 하늘을 하나님 왕국의 우편이라고 표현되는 것이다.

셋째하늘은 에덴동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 2절에서 셋째하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성도가 현재적으로 부활을 믿게되면, 심령 속에 새성전이 세워지는데, 이 새성전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재림하여 들어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부어주신다.

셋째하늘의 존재들(성도)은 영생을 하며, 마찬가지로 신령한 몸을 입고 있다. 고린도전서 15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신령한 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소마 프뉴마티콘(영의 몸)이다. 그러나  성도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육체를 벗으면, 영의 눈으로 불 수 있을 것이다.

이 셋째하늘이 바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이며, 이 땅에서 회복해야 할 하나님 나라(톤 우라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즉 성도의 심령 속에 있던 에덴동산이며 하늘나라라는 천국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셋이다. 첫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셋째하늘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세가지의 형태로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서 죄인들이 가는 감옥도 그 나라 안에 존재하므로 갇혀 있는 나라인 것이다. 감옥이 없어지면 갇혀있는 나라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셋째하늘이라는 의미는 이 세상이 감옥이라는 전제하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감옥이 된 후에 언젠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 이 감옥과 관련하여 설명하기 위한 하나님 나라가 바로 셋째하늘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 하늘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하나가 되는 이치를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셔서 이 땅에 사십일간 머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마친 후에 제자들이 보는 상황에서 승천하셨다. 그런데, 사도행전 111절에서『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엄밀히 제자들이 본 장면은 하늘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심령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것과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과는 다른 사건인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알고 있다. 삼위일체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이 셋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인 것 헷갈리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재림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체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에 일어난 사역을 설명하기 위한 교리인 것을 성도는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도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돌아간 것을 믿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세분이 아니라 한분이시나, 하나님 나라의 범죄한 천사들을 세상에 가두고(인간을 포함한 천지창조), 그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구원) 그리스도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인간 세상에서는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성도에게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것을 믿지 않는 신도(기타 사람들)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에게는 심판자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보혜사로 오신 것이다.

물론 마지막 날에 성도가 아닌 자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주로 오신다. 이것이 백보좌 심판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의 신도에게는 현재적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재림을 가다린다고 하는 신도들은 백보좌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는 신도들은 여전히 율법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들이다.

요한복음 167절에서『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은 요한복음 1615절이다.『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요한계시록 22 7절에서『보라 내가 속히(타퀴 ταχ) 오리니(에르코마이 ρχομαι )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테론 τηρν )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타퀴(ταχ)는 급하게 라는 의미다. 에르코마이(ρχομαι)는 현재시제 중수디포테로서 지금 오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테론(τηρν)도 현재시제이다.

두루마리(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급히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지키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고, 그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키는 것은 보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말씀 속의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진리에 있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비진리의 교회에서 진리를 보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요한복음 142-3절에서『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질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으로 들어오시고, 성도 역시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요한일서 4 13절에서『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엔 아우토(ἐν ατ))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엔 아우토는 그리스도 안에 라는 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 안에 있게 된다. 성령을 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성부는 여호와이시요, 이 땅에서 육체로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분(인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성부와 성자 성령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도 역시 이 땅에 있으므로, 성부와 성자(그리스도), 성령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성부(여호와)에게 있으며,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여호와)가 성도에게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성도가 천국(하나님 나라)이 된다. 마태복음 32절에서『회개하라 천국(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천국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성도의 주인이 되므로, 성도의 이름은 십사만사천이 되며, 천년왕국의 왕이 되고,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이 종말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고 믿는데, 현재적 부활을 믿고, 현재적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자에게는 지금 바로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며, 왕노릇한다는 말이다. 사탄이 세상 왕이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노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았으면, 당당히 진리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비진리에 갇혀있는 자를 구출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특히나 디모데후서 41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크리네인)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이 귀절을 보면 산자나 죽은 자나 다 심판대에 간다고 생각한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크리네인(κρνειν)은 판단하다 라는 의미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인가 죽은 자인가를 판단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심판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에 대해서 그리스도는 언젠가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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